1. My Story  
 2. 개인 학술활동에 관한 비전

 3. 전문가 활동에 관한 약속 I (Teaching)

 4. 전문가 활동에 관한 약속 II (Research)

 5. 나의 이야기 주제, 사명, 비전

  5-1. 주제 선언문, 사명 선언문

  5-2. 비전과 핵심가치

  5-3. ACTions

  5-4. Role Models

 6. 연구공동체 & 대학원생 지도 지침서

1. My Story: 다섯 번의 물러섬(walk-off)

신동일('Jacob' Dongil Shin)은 신자유주의, 단일언어주의, 후기세계화 시대 풍조를 주목하면서 (서울과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또 다른 언어'를 배우거나 사용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연구하는 응용언어학자이다. 차별적 경험, 부적절한 제도적 관행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언어능력, 언어사용, 언어교육의 의미를 어떻게 개입하고 왜곡하는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유, 개인, 비판, 실용, 횡단, 생태, 서사, 담론의 가치에 비중을 두면서 다음과 같은 연구/교육활동을 한다. 

(1) 언어평가(시험개발과 타당화)의 기획/집행, 시험문화 평론 활동을 한다. 특히 국내 상황에서 고부담 언어평가의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

(2) 신자유주의, 기술만응주의, 단일언어주의, 언어결정주의에 포획된 언어(평가)정책/계획, 언어위생화(맥커뮤니케이션) 문화(비판적) 담화/담론분석, 서사분석으로 탐구한다.

(3) 링구아 프랑카(접촉), 트랜스링구얼(횡단), 메트로링구얼(도시), 이콜로지 언어환경(생태), 언어자원, (코스모폴리탄/디아스포라) 언어정체성/권리 등에 관한 대안적 학술전통을 새롭게 구축한다. 

(4) 서사(내러티브), 혹은 스토리텔링을 언어능숙도, 페다고지, 연구텍스트, (디지털) 콘텐츠, 사회적 실천, 사고방식, 세계관이나 문화계승의 양식으로 연구하며, 학교, 기업  등 여러 현장에서 스토리텔링 기반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언어를 관념, 순수, 중립, 단일의 보편적 시스템으로 보지 않고, 실천적이고 사회정치적이며 특정 공간이나 생태/관계적 산물로 인식하고 있다. 언어를 연구할 때 생명, 자원, 생활의 속성 혹은 메타포에 주목한다. 언어는 맥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대상도 아니고 정복하고 획득하는 무기도 아니다. 언어는 맥락 그 자체이며 모든 기호의 총합이며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모어가 아닌 또 다른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는 박제화된 (원어민) 언어를 외워서 마음 속에 저장시키기 위함이 아니며 살아 있고 실천하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기 위함이다. 영어를 10년 공부했는데도 (학원과 학교선생님 말고) 영어로 어느 누구도 만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여전히 입력-정보처리-저장-출력의 코드만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실천적 언어/담론 이론, 후기구조주의, 내러티브탐구, 스토리텔링, 구술의사소통, 적정(appropriate)교육, 능숙도 모형, 제2언어 학습자, 시험준비, (조기)유학생, 다중언어 사용자, (이주민의) 시민권 등에 관한 학제간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획일적이고 지배적인 고부담(high-stakes)언어시험의 집행, 시험준비(teach-to-the Test) 언어/학습, 언어에 관한 순수주의나 언어결정주의, 원어민 중심주의, 시장만능주의, 테크놀로지지배주의, 전체주의 기반의 언어정책/계획안을 반대한다. 링구아 프랑카나 트랜스링구얼 논점, 세계시민주의, 다중적 언어자원에 관한 배려와 사회적 배치, 언어정체성교육과 스토리텔링교육, 언어평가지식 교육, 유학생/이주민/소수자의 언어권리 운동, 특수목적형/지역화된 언어시험, 적정언어/교육 프로그램, 자유/개인주의 캠페인을 지지한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199910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3월부터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20053월부터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부터 10여년 동안 학교 안팎에서 주로 'English Language Assessment', 'Oral Language Proficiency' 분야의 연구/자문 활동에 참여했고 국가기관이나 기업 등 다양한 현장에서 영어능력평가 기획과 설계, 채점자 교육자와 채점프로그램 개발자, 말하기의사소통이나 스토리텔링 관련 콘텐츠 개발자로 활동했다. 대화, 인터뷰, 스토리텔링, 발표, 토론 등 한국인의 영어담화 연구와 스토리 기반의 거짓유창성 혹은 문식력(literacy) 진단, ELT 예비전문가를 포함한 다양한 개인들의 성장과 변화에 관한 라이프 코칭 활동도 했다.

그 후로 지식 활동의 외연을 넓혀서 언어(학습)의 테크놀로지화, 시장과 공리적 가치에 잠식된 언어(교육평가)정책, 개체화된 수험자와 획일화된 시험준비 문화, 언어시험/정책의 오용과 횡포, 위험시대의 언어정체성, 그리고 생태주의 교육언어학을 주목하고 있다. 개인의 삶이나 사회를 무기력하게 하는 전체주의적/비인격적인 힘의 근본을 자유주의,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 학습으로부터 성찰할 수 있었고, 서구의 근대 역사, 기독세계관, 디아스포라, 행복, 연애, 스토리텔링, 에디톨로지와 같은 학제간 주제도 탐색하고 있다. 한국어-영어-문어-학술/학교언어에 묶이지 않기 위해 다양한 매체에서 글쓰기나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몸, 그림, 외국어와 같은 기호를 매일 다르게 익히면서 보다 역동적인 언어학적 레파토리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교수로서 이미 충분히 사회적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나 단체 혹은 소외된 사회계층을 무료로 돕는 프로보노 개인 활동에 더욱 시간을 보낼 계획이며, 수익형 모형에 휘둘려 가장 높은 가격을 불러주는 입찰자에게 교육적 신념을 숨기는 장사꾼 교수로 일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안식년인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인문학적 훈련에 기반을 둔 일상적인 글쓰기활동, 언어-평가-정책/계획의 사회문화적 단면과 같은 특정 분야를 깊게 탐구하는 각론연구,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현실 밀착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학문활동을 준비 중이다.

다양한 학제간 연구 분야에서 100여편이 넘는 논문을 등재지에 게재했으며 '한국의 영어평가학' 시리즈 (1 시험개발편, 2003; 2 말하기시험편, 2006; 3 스토리텔링편, 2009; 4 사회문화편, 2012) ' 등을 포함한 단행본 10여권을 저술 혹은 번역했고 그 중 몇 편은 문화관광부와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2000-2007년에 한국영어평가학회 총무이사, 2007-2009년에 비영리법인 ACTFL(American Council on Teaching of Foreign Languages) 한국위원회를 설립하여 위원장을 맡았고, '신동일연구소'를 창업하여 영리단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 2016년 2월까지 중앙대학교 BK21 PLUS 스토리텔링사업단장을 맡았다.

아래는 지금까지 학술적 성장과 변화를 이야기 모양으로 정리한 것이다.

(1) 응용언어학, 언어평가 분야에서 대학원 공부

대구가 고향이며 경상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경험한 짧은 문예창작부 경력 탓인지, 영어공부가 늘 재미있어서 그랬는지, 아님 그냥 부모님에게서 멀리 떠나 독립하고 싶어 그랬는지 기억은 도통 나지 않지만 얼떨걸에 중앙대학교-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중3 때부터 시작된 방황, 책상에 앉아 공부에 좀처럼 집중하지 않은 습관은 대학 2학년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휴학을 마치고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문학, 언어, 교육, 광고/홍보, 정치, 경영,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대학 공부가 재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 2학년 때까지 학점이 B를 넘지 못했지만 교직 전공을 얼떨결에 이수할 수 있었고(당시에 학과에서 10% 성적 우수자에게만 교직을 이수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인기가 없었던 교직 전공에 우등생들이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평점 2.7 성적으로 교직을 전공할 기회를 얻음), 졸업 후에도 중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3-4학년 때 학교 밖에서 경험한 올림픽행사의 통역, 해외 여행 등의 기억에 고무되어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다녀본 경험 한번 없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MBA 경영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했다.

그런 중에 응용언어학이란 정체가 불분명하고 생소한 학문 분야를 알게 되었다. 주위에선 (특히 한국 사람들은) 그런 걸 공부하면 밥 굶는다고 강경하게 나를 말렸지만 왠지 모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학문 같아 보였고, 무엇보다 학부 때 다양한 전공을 조합해서 산만하게 공부한 경험마저 도움이 될거라 판단했다. 미국대학에서도 단일 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언어학, 교육학, 통계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여러 학과에서 모자이크를 채우며 석박사 과정을 마쳐야 했는데 그나마 역량을 집중한 영역은 'English Language Assessment(언어평가)' 그리고 'Oral Langage Proficiency(구술 능숙도)' 주제였다. 심리측정학(psychometric) 연구방법에 기반을 두고 영어구술평가의 구인타당도 검증 분야로 석사(Iowa State University)와 박사(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학위논문을 마쳤다.

(2) 측정데이터 분석가에서 시험 기획개발자로 성장

박사 과정에서, 또 귀국해서 우선적으로 참여한 연구활동은 영어시험 현장에서 수집한 계량적 데이터를 다양한 측정 프로그램으로 분석하는 일이었다. 문항반응이론과 같은 심리측정학 모형을 이용해서 실증적 연구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을 여러 학회/학술지에 자주 발표했고 학회 할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학술단체에서 총무, 재무, 편집, 국제협력, 학술대회장(conference chair), 편집장을 맡으며 많은 연구자들을 만나고 학술 업무도 배웠다. 또 시험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현장에도 자주 참가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적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자에서 시험을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개발하는 책임자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대학에서 직접 개발하고 시행한 MATE(Multimedia Assisted Speaking and Writing Test of English) 시험 운영과 연구를 책임지게 되었다. 당시 숙명여자대학교는 국내 대학 최초로 영어말하기/쓰기능력으로 졸업인증제를 실행했는데 나는 2003년부터 교양영어 프로그램의 책임자이기도 해서 학생들이 입학부터 졸업까지, 영어능력, 영어교육, 영어인증평가에 관한 모든 절차와 내용을 감당해야 했고 여러 학내외 협력기관과 함께 교육과정/교재/시험 개발, 혹은 원어민 교사 선발과 교육 등의 관련 업무를 추진하고 재편했다.

대학 강의는 처음엔 주로 개론 과목, 심리측정학/양적연구 방법론을 맡아 가르쳤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교육/평가)에 관한 다양한 단면, 사회문화적 담론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인문사회 학문 분야의 다양한 이론을 조합하며 강의를 늘 새롭게 준비했는데 예를 들면 그 때부터 데이빗 보일 '숫자의 횡포' 닐 포스트만 '교육의 종말' 혹은 미셀 푸코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서구중심주의에 관한 비평적 텍스트를 수업시간에 사용하곤 했다. 아마도 내가 소속된 곳이 교수법-교재에 집중하곤 하는 TESOL프로그램이나 영어교육과가 아닌, 다양한 학문 분야가 공존하면서, 그럼에도 인문학 교육의 비중이 컸던 영어영문학과였기 때문에 젊은 교수임에도 경계를 넘는 배짱과 문제의식을 그 곳에서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짱은 내가 일한 현장에서 적용되기 시작했다. 우선 2003년이 지나면서 국내 선다형(multiple-choice format) 시험의 부적절한 사용/횡포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반복적으로 (거의 소장파 교수로 순응적으로) 참여하곤 했던 고부담시험의 선다형 문항 출제자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맡지 말자고 작정했다(1st Walk-off).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편입시험 문항 출제 등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재정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수입원이었고, 젊은 교수가 감히 거절을 하기도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대안, 미래지향성을 고민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국가기관이든 선배교수든 호출에 쉽사리 추종하지 않았다. (3회 연속으로 (모의)수능 시험의 출제자 참여를 거절하자 더이상 거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신에 대부분의 시간을 말하기/쓰기/수행/교실/대안(평가)을 더 알기 위해 공부에만 전념했다. 30대 중반의 젊은 교수로서 이러한 결정이 쉽지 않아서 몇 번이나 결정을 번복하기도 했지만 결국 새로운 연구주제로 전환하고, 학자 정체성을 새롭게 품을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닐 때 공부가 부족했던 질적(qualitative)연구방법과 교실평가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당시 천안대학에 재직 중이었던 박종원교수(질적연구방법 전공)와 경북대학교의 Andrew Finch교수(교실/대안평가 분야에서 광범위한 자료 축적)에게 협력학습/연구를 요청하고 1년을 넘게 천안과 대구를 정기적으로 학생들과 내려가면서 필요한 공부에 집중했다. 덕분에 양적 연구자, 데이터 분석자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고 질적 자료에 기반을 둔 평가활동, 교실평가에 관한 연구논문도 출간하기 시작했다. 또 Finch교수와는 교실평가 분야로 단행본도 출간할 수 있었다. 아낌 없이 나와 지식을 공유해준 두 교수에게 참 감사하며 나도 그들이 좀 더 주목을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 기뻤다.

또한 국내에서 시험개발자로서의 재교육 기회를 좀처럼 가질 수가 없어서, 호주 ISLPR (International Scale of Language Proficiency Rating, Grinffith University, Australia), 영국 ELT & Assessment International Seminar (British Council, UK), Cambridge ESOL YLE (Young Learners of English) Examiner, 그리고 미국 ACTFL (American Council of Teachers of Foreign Languages, University of Pennsyvania, USA) 기관 등에서 영어평가 전문가 및 채점자/면접관 훈련 과정을 200시간 이상 이수했다. 그리고 영어시험 예비전문가 및 채점자교육과정 프로그램에서 250시간 이상 전문 강사로 활동했다. 호주, 영국, 미국을 다니며 부지런히 배우고 자료들을 빠짐없이 정리하고 책이나 논문으로 옮겨 두었다.

이 시기에 가장 귀한 경험은 역시 2000년부터 2005년 2월까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교양영어 프로그램과 MATE 영어평가 프로그램의 책임자를 맡아 다양한 시험개발과 시행의 현장을 직접 주도한 경험이다. 책임자로서 수정하고 보완한 영어말하기시험은 결국 2005년에 국가공인 시험으로 등록되었고, 수년 동안 문항개발/감수, 채점과 채점자교육, 시행, 그리고 전문인력을 충원하고 DB를 교체하고 시험을 알리는 일까지, 온전한 하나의 평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행시키면서 다양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때 배운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YBM-Sisa의 SEPT(Spoken English Proficiency Test) 시리즈 개발, 미국 ACTFL과 삼성크레듀의 OPIc (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 개발과 시행, 교통부의 Pilot & Air Traffic Controller 대상 영어말하기능력인증평가, 교육부의 국가영어인증시험 등에서 책임자, 개발자, 자문자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과 자신감 덕분인지 신임 연구자/교수 시절부터, 학교/학회에서의 신진학자로서는 유난스럽게 영어평가 연구자의 정체성에 특별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응용언어학, 영어교육 전공에서 세부 전공자의 의미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때라서) 어디서든 '영어평가'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내 자신을 장황하게 소개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숙명여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이병민교수(현재 서울대 영어교육과)가 "대충 영어교육 전공이라고 소개해라. 그럼 편하다."고 내게 권면을 했던 기억도 난다.

(3) 프로그램 운영자, 콘텐츠 기획자, 그리고 Writer로 외연 확장:

대학에서 독립적으로 개발한 MATE 말하기/쓰기평가에 집중해야 했던 숙명여자대학교의 교수 신분도 내겐 귀했지만 보다 자유로운 학풍의 중앙대학교 교수로 2005년 3월에 직장을 옮겼다(2nd Walk-off). 작은 대학교 안에서 골목대장 역할을 하긴 좋았지만 대학에서 만든 시험(개발, 시행, 영향력)의 한계에 갖힌 것이 답답했다. 국내외를 오가며 영어시험에 관해 많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좀 더 모험적인 역할도 맡고 싶었고 한 곳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해보고도 싶었다.

학회를 포함한 여러 기관 에서 맡은 '소모적인' 혹은 학자로 배울 점이 없었던 일들을 계속 정리해가면서,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인 (1인)연구개발자, 콘텐츠 기획자, 혹은 학술교양서를 만들 수 있는 전문 작가(writer)로 성장하고픈 꿈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에 맡은 일 중에 가장 무게감이 컸던 것은, 아마도 YBM-Sisa & 한국TOEIC위원회에서 맡은 자문 활동이었다. 기업 자문을 맡으며 시장, 자본, 실용, 절충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말하기평가 콘텐츠, SEPT(Speaking English Proficiency Test)의 추가 개발를 위한 자문을 맡으면서 항공종사자 대상의 영어말하기시험, Young Learner 대상의 SEPT 평가콘텐츠 시리즈를 차례로 기획하고 개발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SEPT 시리즈의 시행사는 국내에서 언어평가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독립성과 잠재력을 포기하고 ETS의 TOEIC-Speaking을 대신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TOEIC-Speaking 국내 시행의 독점권을 갖는 조건이 국내에서 축적한 자체 평가콘텐츠, SEPT 시행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째거나 여전히 YBM-한국TOEIC위원회는 영어시험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나 나는 내가 할 일을 더 이상 그곳에서 찾지 못하고 정중히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3rd Walk-off).

마침 바로 그 때 삼성 크레듀로부터 미국 ACTFL-OPIc 말하기시험의 국내 시행 및 콘텐츠 개발의 론칭을 자문해달라고 제안을 받았다. 기업의 자문 역할에 한계를 이미 경험했지만 미국 ACTFL위원회로부터 한국위원장으로 선임을 약속받았고 비영리학술단체 안에서 연구와 교육활동에 관한 기업 후원을 받는다면 국내 영어교육의 물꼬를 바꿀만한 (스토리텔링 기반의) 교육문화(콘텐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고민 없이 새 일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OPIc의 지명도는 꽤 높지만 그 일을 하기로 수락한 2006년만 하더라도 시험 시행도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때라 교재 하나도 변변히 없던 때였다.

교수라면 관행적으로 참가하는 고부담 선다형 지필시험 출제 업무를 그만 둘 때, 대학에서 국내 최초로 운영되던 영어말하기/쓰기시험 시행과 인증화 작업을 홀로 감당해야 할 때, 골목대장 역할을 내려놓고 기업 현장에 가서 시장 논리와 협상하며 SEPT 콘텐츠를 만들 때, 그리고 교재 하나 변변치 않고 담당 연구원 한 명조차 없이 시작한 한국ACTFL-OPIc시험의 현장에 처음 들어 섰을 때, 늘 막막했고, 그러나 그만큼 무척 흥분되고 멋진 모험이었다. 헬렌 켈러의 말이 맞다. 하나의 문을 열고 나오면 새로운 문이 연결되었고 그건 정말 멋진 여정이었다.

ACTFL-OPIc 국내 개발/시행을 준비하면서 2006년부터 나는 국가영어(말하기/쓰기)인증시험(추후에 NEAT로 이름이 바뀜)의 초기 기획 및 개발 과정에 초대를 받았다. 고작 3-4명의 전문가와 그 일을 처음 준비할 때 좀처럼 주목을 받지도 못했지만 부지런히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드나들며 말하기와 쓰기시험에 관한 국가의 개입이 왜 필요한지 설득했다. 시장에만 맡겨서는 관련 평가지식/권한을 결코 대중적으로 유포/위임될 수 없다는 신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기획안이 해당 기관의 심의를 통과하고 국가 프로젝트로 거액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 2007년 여름, 나는 그곳에 작정하고 모여든 이해당사자들로부터 국가가 만든다는 새로운 고부담시험의 권력, 이기심, 자본 지향의 'Politics in Testing Industry(시험산업의 정치학)'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어떻게 지식활동을 할 지 커다란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때까지 국내 여러 시험개발 및 시행 현장에 참여하면서 축적한 평가자 경험은 내겐 큰 자랑이기도 했는데 오히려 전문가로서 이름을 걸고 (한국ACTFL-OPIc 등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국가시험에 참여시키면 안된다는 학회 원로들의 견제와 기괴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 나로서는 10년 가까이 학회 임원으로서 성실하게 돕고 희생한 곳의 원로들로부터 견제를 받은 셈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1인 연구자로 좀 더 안전한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전시킬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돈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국가시험의 초기 의도와 유의미성 역시 계속 탈색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소신을 갖고 일하긴 힘들다고 깨달으면서도 기존의 질서 안에서 내 이름을 한 칸 올려 놓자고 애쓰며 대충 일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결국 나는 배짱있게 당시 국가영어인증시험의 추후 개발 현장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4th Walk-off). 당시에 개발자로서의 전문가 정체성이 강했던 나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엄청난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에 꼭 참여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주류에서부터 홀로 당차게 걸어나온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큰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고 큰 돈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도 초대를 받지 못하더라도, 정말로 내가 궁금한 것을 공부하고, 외풍에 눈치보지도 말고, 긴 시간 동안 탐구해볼 수 있는 계속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이런 저런 세상 일을 할 때 몰래 해야지 이름을 드러내고 일하진 말라고 당시에 구체적인 충고도 들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속한 학문 분야의 학자들은 이름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영어든 교육이든 세상이 이처럼 어수선해도 왜만해선 공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만 살짝 감추고 있을 뿐 세상 누구보다도 바쁘게 많은 일을 맡고 있다.) 40도 되지 않은 나이에 나는 이제 앞으로 내 학문 분야 안에서 할 말은 하는 성실한 지식인으로 내 경험과 지식을 거듭 내리라 그렇게 결심했던 것 같다.

영어시험의 개발과 시행은 돈, 네트웍, 국가를 포함한 크고 작은 조직의 정치적 이해관계, 혹은 외풍에서 언제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교수 신분의 1인 연구자는 시험개발의 방향과 의미에 관해서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왜곡시키곤 한다. 돈이 된다면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동종시험만을 재생산하는 일을 선호하기도 하고, 어느 현장에서나 관계에 연연할 뿐, 신념과 철학을 지키지 못하는 개인 연구자가 많다. 어쩌면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면서 이런 저런 세상 욕심에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현실 밀착적이고 공적인 지식인이 되자는 비전은 자동으로 삭제되는지도 모르겠다.

큰 일은 내려 놓았지만 다행히 그 때까지 국내외에서 시험기획과 개발을 참여하면서 시험시행, 인력양성, 시험준비 분야에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큰 재산이었다. 여러 학교/기업/국가기관(건설교통부, 교육인적자원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서울시교육청, 인천영어마을, 삼성인력개발원, (주)크레듀, 서강SLP, 숙명여대 MATE, 대교연구소, YBM-Sisa, 튼튼영어, 잉글리쉬헌트, EE-YA Korea 등)에서 평가 및 말하기 콘텐츠 개발 및 시행과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전문가 활동을 했었다. 그 때 경험은 지금 글쓰기와 연구활동에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

2008년 5월에는 중앙대학교 창업센터를 통해 영어-말하기-진단평가 콘텐츠를 주로 개발하고 자문하는 '신동일연구소'를 창업했다. 단순히 시험을 만들고 시행하는 일 뿐만 아니라 보다 영어-시험-학습에 관한 다양한 단면의 콘텐츠를 학교 밖 세상에서 어떻게 제작하고 유통시키는지를 배울 기회였다. 당시에 구본형 작가 등의 서적을 통해 지식기업, 1인기업, 비영리기업, 사회적 기업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건 연구소를 창업한 건 매우 쑥스러운 일이지만 멋진 모험이었다.

2년이 지나면서 시장의 논리를 학습하며 수익모형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에 나 자신의 달란트가 부족함을 깨닫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여유는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중심의 가치판단을 일상적으로 내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점점 불편해졌다. 창업을 통해 프로보노 공익활동, 비영리 지식기업, 더 작은 규모의 1인 전문가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2010년 미국대학에서의 연구년을 결정한 후 연구소는 이름만 남기고 중단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후회 없었다. 연구소 및 1인기업 운영의 여러 단면(재무, 마케팅 등)을 배울 수 있었고 진단평가 솔루션 개발기획 뿐 시험 준비와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교재, 인력양성 등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보았다. 이 당시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여러 기업/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글을 쓸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 때 경험은 2013년부터 중앙대학교 BK21 플러스 스토리텔링 사업단을 제안하고 운영하는 단장 업무에 중요한 영감과 사전 정보를 주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하는 중에, 학술적 엄격함만을 강조하는 교수 혹은 학자의 정체성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고, 이야기꾼(story-teller) 대중 연구자 (pop researcher)로 성장하기 위한 인터넷 글쓰기, 대중적 코드의 글쓰기 활동을 여러 매체에서 실험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 정기적으로 신문이나 매거진 등에 게재한 컬럼들이나, 기타 글 모음은 네이버 개인블로그에 정리해 두었다. 또한 실험적으로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한 '영어말하기전략(크레듀)' 'Now Storytelling(넥서스)' 등과 같은 말하기시험 준비/학습서는 YES24, 교보문고, 인터파크 등에서 '추천도서' '베스트셀러' 단행본으로 판매되었다.

(4) 연구년 2010년,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

2010년 동안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영어평가 영역으로 연구자 활동을 시작한 이래 쉼 없이 일에 전념하다가 처음으로 시험개발/시행의 현장을 떠난 셈이다. 한국ACTFL위원장-OPIc시험의 자문 업무는 지켜왔지만 그마저 기업의 대표,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시행사의 수익 논리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비영리교육단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도 영업과 홍보를 요구하는 걸 보면서, 계약기간이 1년이 더 남아 있었지만, 연구년이 시작되기 전에 연구와 집필에 대한 비전을 새로운 비전을 고 싶어서 협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5th Walk-off).

어디서든 연구하고 기여하지 못하고 영업이나 비판의식 없는 홍보에 동원된다고 느껴지면 그 땐 그만두는 것이 낫다. 한국ACTFL위원회와 OPIc이 시작될 땐 시행사의 리더들과도 능숙도운동(proficiency movement), 스토리텔링 캠페인, 대안적인 영어말하기공부(문화), 새로운 시험(준비)콘텐츠의 구축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흥분감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여름 OPIc시험의 영업팀이 한국ACTFL위원회의 스폰서가 되면서부터는 그와 같은 비전은 나눠지기 힘들었고 더이상 그들과 동역자의 마음으로 일하긴 쉽지 않았다.

YBM-Sisa 등과 같은 기업에서 자문을 할 때와 달리 비영리교육단체의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나는 대담하게도 시험의 시행사와 건강한 긴장감을 가지며 동역자의 마음으로 지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교육문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공포했다. 전례도 없었고, 영어시험을 보유한 기업이 상장사가 되면 한가롭게 연구를 포함한 비영리적 탐험에 돈을 쉽사리 쓸 수도 없을 터인데 어찌 보면 난 참 순진한 생각을 품었다. 내가 노력하면 시장마저 반응하고 사람들은 설득될 것이라는 배짱만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정치적으로 미숙한 터라 마당을 깔고 새 일은 곧잘 실행시키지만 좌판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그 자리를 물러나곤 한다. 다만 아쉬운 건 내 자리엔 새 일꾼이 들어오기 보다는 구태의연한 사람들이나 종전과 다를바 없는 콘텐츠가 채워진다. 시장은 참 안 바뀐다. 사람도 참 안 바뀐다.

나는 2009년 가을에 국가영어능력평가 1급시험의 개발을 책임 기획해달라고 대한상공회의소로부터 제안을 받았는데 그 때 역시 그릇이 작은 기업의 한계와 영어시장의 구태의연함을 진하게 경험했다. 당한 일이 많아서 이번엔 허수룩한 국가시험에 쉽사리 참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시 프로젝트의 실무자나 전체 책임자는 내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며 시험을 장사 수준이 하지 않을 것이고 시험을 통한 큰 비전을 공유하자고 덤볐다.

나는 국내/국외, 학교/기업이 협력해서 컨소시엄으로 국제적인 시험을 만든다면 국내에는 전례가 없었던 특수목적형 비지니스평가안으로, 그리고 국내 기득권 안에서 나눠먹기 방식이 아닌, 외국의 전문가/학자/기관을 절반 이상 참여시키며 지속적인 펀딩을 보장받으며 전문적으로 시험을 개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공유했다. 그러나 또다시 좌판이 벌어지니 이해관계자들이 몰려들고 결국 담당자들은 나와 같은 1인 연구자와의 약속은 쉽사리 위반하고 시장의 논리로, 정치력의 기술로 소문과 편나누기, 그리고 나눠먹기 흥정을 시작했다. 이번엔 물러설 일도 없었다. 1인 연구자가 낄 자리가 아닌 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예외없이 2-3년 동안 돈잔치를 벌리고 자리를 나누다가 변변한 콘텐츠 하나 남기지 못하고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분주하게 시험을 만들고 시행하는 학교, 기업, 국가 프로젝트의 현장을 완전히 떠나 나는 먼 미국에서 연구년을 갖는다.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까지 했지만 놀랍게도 어떠한 기관/권위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독립적인 아카데미아로 돌아간 나는 매우 흥분되는 지적 경험을 1년 내내 하게 된다. 그동안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분야(예: 사회이론)에서 수업 청강도 하고, 기독교세계관도 몇몇 교수들과 세미나를 했고 아프리카 케냐에 아웃리치를 다녀오기도 했다. 매일 읽고 쓰는 일상이 즐거웠고, 여전히 약간은 불편함을 느꼈던 유목적, 주변적 1인 지식인의 정체성에 다양한 의미 부여를 하게 되었다. 대학원생일 때 지도교수가 종종 '언어평가는 정치적이다' '시장의 논리에서 실용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경험한 것에 공부를 더하니 글로 세상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영어시험에 관해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했고, 그래서인지 그러한 경험을 설명할 이론을 찾으면서 평생 동안 붙들 연구주제들도 눈에 들어왔다. 뭐랄까, 공부꾼으로 거듭났다고 할까. 게다가 공공 지식인의 정체성을 꿈꾸게 되었다. 개미를 연구해서 박사가 된 최재천교수가 이제는 생태계와 지구동공체를 설파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영어시험의 경험적 담론을 기반으로 해서 언어와 교육공동체에 관한, 삶과 앎에 관한, 보다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유를 시작하고 싶었다.

현장에서는 물러섰지만 수년 동안 강의와 파일럿 연구로 자료를 축적한 언어평가의 사회정치학 단면에 대해 연구와 집필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철학,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 뿐 아니라 교육, 심리, 사회,정치, 문화 등에 관해서 (비)학술자료를 계속 읽으며 생각의 흐름을 편집했다. 정리할 자료가 너무 넘치고 공부는 아직 모라자서 아마도 10여년은 다른 일은 하지 못하고 개인 연구만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2010년에 출간한 'Power of Tests' 번역서인 '시험의 권력' 에 이어 2013년에 'Language Testing: Social Dimension' 번역서 '언어평가: 사회적 단면' 작업이 멋진 출발이 되었다.

앞으로도 언어평가의 담론(discourses)에 대해 책을 계속 번역하거나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주의, 기술지배주의, 실증주의, 단일언어주의, 표준화/경쟁의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영어(학습)의 테크놀로지화, 학습자/수험자의 개체화/객체화, 시장논리와 국가주의 담론의 포로가 된 언어(시험)정책의 오용과 횡포에 대한 지식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질 계획이다. 비판과 실용, 미시와 거시, 생활과 이론의 담론을 새롭게 조합하기 위해 자유주의, 개인주의, 비판이론,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세계화, 실용주의, 다중언어주의 이론도 부분적으로 조합하여 수용할 계획이다.

연구년에 깨달은 것이 또 있다. 그동안 열심히 활동의 외연을 넓히고 탐색적인 연구도 멈추지 않은 덕에 배운 것도 많았고 성과도 많았다. 탐색을 멈추지 않으면서 나의 다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언어도 찾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의 일이나 진전에 비교적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는 편이고 부당한 외압이나 소문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폭을 넓히는 탐색과 다름의 여정에 애쓰다 보니 어느 영역에서든 앎의 깊이/치밀함에 시간을 쓰지 못했다.

또한 국내 현장 가까이서 많은 일을 하느라 한국어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보니 연구/교육 활동을 영어로 전할 기회나 역량을 축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중적인 코드의 쉬운 (한국어로) 글 만들기에 재능을 보이지도 못했다. 출판사가 좀 쉽게, 재미있게 글을 만들자고 해도, 그렇게까지 책을 만들 마음이 사실 없었다. 몇 권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긴 했지만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책을 만들지도 못했다.

그 뿐인가?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을 둔 지식활동에도 2009년에 관심을 두고 기독학술단체에서 논문발표도 시작했지만 사실 그 쪽으로 시간을 쏟으며 열심을 다하지 못했다. 무엇 하나에도 깊게 오랜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연구한 분야가 없었다는 인상을 버릴 수가 없다. 미국에서 여러 매체를 오가며 학제간 연구분야에서 다양한 글읽기를 하면서 내가 가진 앎의 깊이와 진정성에 부끄러움을 느낀 적도 많았다.

좀 더 고민을 해야겠지만 이제는.. 정말 아주 천천히, 매일매일, 깊게 아주 치밀하게, 필요하다면 탄탄한 넓이로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연구분야에서, 또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잘 할 수 있고, 꼭 하고 싶은 전문 연구분야에서, 진정성 있는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다. 아마도 나는 국내에서 영어(구술)평가 분야에서만큼은 2000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가장 치열하고 폭 넓은 현장경험을 축적한 학술연구자일 것이다. 익숙한 지성을 거듭내는 것, 새로운 공부습관을 갖는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지금까지의 현장 경험이 글쟁이 되기를 소망하는 내게 큰 재산이 될 것이다.

성과가 곧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탁월함을 갖기 위해 걸리는 소요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평생 찾아오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언어, 영어, 학습자, 수험자, 이주자, 유학생, 시험, 말하기, 담화/담론, 교육, 정책, 미디어, 의사소통, 스토리텔링, 정체성, 달리기, 인생, 믿음, 소망, 혹은 사랑에 관한 생명력 있는 글을 쓰는 작가/연구자로 매일 조금씩 성장하길 소망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늘 한다. 그럼 또 어떤가?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 이와 같은 소망을 감추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내 삶의 진정성, 생동감, 놀이로 느껴지는 공부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보다 현실실천적인 참여를 시작하든, 아니면 글쓰기나 온라인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며 개인의 시간을 더 확보하든, 분명한 것은, 돈이든 권력, 유행이나 눈치, 혹은 체면이나 태만의 이유로 내 남은 여정을 선택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다 그런거야. 나로서도 어쩔 수 없잖아.'라고 체념하고 싶은 패배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5) 학교 밖에서 하는 일, 연구 관심사, 돕는 일 등

학교 밖에선 주로 집에서 개들과 살고 있으며(살기를 희망하며), 종종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넓은 창이 있는 카페에서 몇 권을 책을 한꺼번에 읽곤 한다. 아내가 미술을 시작하면서부터 미술도 배워보고 그런 저런 책도 더 보지만 그 전부터 미술관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서구 근대 역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의 역사 자료를 박물관에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테니스, 달리기, 자전거, 걷기, 이런 저런 스토리 수집하며 여가를 보낸다. 이중에서 달리기를 개인의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에 포지션닝하려고 노력했다. 달리기는 운동이라기 보다는 삶의 메타포로 붙들고 있다. 풀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지만 보스톤 마라톤 참가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요즘은 걷기로 메타포를 바꾸고 있다. 2009년부터 몇 년동안 크리스쳔으로 학문하기, 기독교세계관에 관한 원고도 만들었다. 2012년에 전문인선교사 과정을 이수하고 선교사 파송 자격도 갖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가 서 있는 학술연구 분야에서 그 어느 선교사 못지 않은 헌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2. 개인 학술활동에 관한 비전(2009년 작성. 수정 필요)

(1) 언어(영어)-평가-구술-담화/담론 분야

나는 우선 영어시험의 개발과 시행에 관한 다양한 단면들, 예를 들면, 영어시험에 관한 역사-사회-문화-정치적 단면, 나쁜 영어시험을 경계하고 추방하는 교육캠페인, 수험자와 시험준비, 윤리와 인권, 미디어 담론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또 언어/영어에 관한 코스모폴리탄 정체성, 언어권리, 다중언어주의, 구술의사소통, 스토리텔링 등의 분야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 평생동안 연구자로, 작가로, 선수로만 경주할 계획이다. 관행에 밀려 외롭고 두렵더라도 창조적인 소수자로, 지혜와 용기가 넘치는 연구자로, 그리고 상상력이 넘치는 전문 분야의 글쟁이로 일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학문주체가 될 것이다. 수익형 모델에 휘둘려 가장 높은 가격을 불러주는 입찰자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장사꾼 교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글쓰기에 참여하며 세상의 언어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사랑, 공의)이 담긴 단행본을 출판할 것이다. 평생의 노력으로 성경적 지혜와 용기로 무장된 나만의 지식 브랜드를 만들 것이다. 지식을 교실과 학교 밖으로 이동시켜 실천과 진정성이 있는 운동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삶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영어평가와 (말하기)의사소통에 관한 현장 경험을 부지런히 축적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생각하는 것에 큰 기쁨을 가진다. 못하는 것도 많지만 내가 잘하는 분야가 있을 터이니 그곳에서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자 한다. 서구의 담론과 이론을 거칠게 직수입해서 절대 학생에게 전달하고 강요하지 말 것을 다짐한다. 한국의 대학이 고유의 교육철학, 대학조직, 교과과정이 부재하며 외국 특히 서구의 것을 베껴왔음을 자각하고 잡화상식 지식전달자 이상의 계시적인 지식인 역할을 감당할 준비를 한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나는 복수/다중/혼종의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포용하면서 이에 관한 학술운동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결핍의 상태로서의 타자가 아닌 '차이'로서 자신을 찾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관행과 전통으로 자리 잡은 중심을 더 이상 보편적인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 상대화시키는 훈련을 계속 할 것이다. 영어영문과 교수로서 영어에 관한 것을 가르치고 나 역시 배우는 일을 할 때 나와 학생들이 타자화된 자신을 재발견하는 '시선'을 갖도록 노력한다. 나부터 변화하고 탈프로그램하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인식의 변화는 자신이 선 자리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일상에서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으로 단행본을 기획할 때 기억해야 할 점은 항상 공격적인 글쓰기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 고려대 김우창 교수의 심미적 이성론에 관한 우리 이론 만들기 작업과정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며 나의 글쓰기와 책쓰기에 반영하고 싶다. 다른 영역이라 직접 논의는 힘들지만, 그의 모델은: “일정한 이론모델이라기보다는 오랜 탐구의 반성적 결과물이라면, 그것은 학문 활동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삶 일반의 바탕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은 ‘이론’이라고 불려지는 대개의 것이 그러하듯 서너 편의 논문이나 한 두권의 책 속에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 저작을 통해 나타난다. 심미적 이성은 그가 쓰는 거의 모든 글의 전경 혹은 배후를 이루면서 고수되어야 할 고정불변의 준거틀로서가 아니라 가끔씩 확인하고 상기하며 또 부단히 교정해가야 할 삶의 어떤 척도 더하게는 내면화된 태도로 자리하는 것이다. 그의 심미적 이성은 탐구의 정신이자 삶의 양식 또는 태도이다. 이것은 예술의 세계란 다름 아닌 돌아가야 할 본래적 양식으로서의 삶을 추구한다고 할 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이론과 실천, 삶과 학문의 일치를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점이 날 두렵게 한다... 심미적 이성은 인문학도라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고민해봄직한 또는 체현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한 이념적 전형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교수신문 2002년 9월 23일 기획 기사 중에서).

대학과 지식인 사명에 대해서도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대학은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성이 숨쉬는 곳이다.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고 진단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회에 실천적으로 기여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지식인(인텔렉추얼)은 사학자 이광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과 문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강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지식인의 존재를 각별히 비판적 지성으로 예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요체가 다수 대중의 지배라고 할 때 소수 식자층의 권위와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되게 마련이며 이러한 경향은 문화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에 한발짝 다가서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인에 대한 조롱과 경멸이 난무한데 그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식인의 관념적 추상성이다. 보편적 인간적 가치의 담지자를 자임하는 지식인에게 현실의 추상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현실의 다양한 세목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세목을 관통하는 모종의 원리를 중심으로 현실의 핵심을 거머쥐려고 한다. 문제는 추상화의 결과가 현실과의 피드백 고리를 잃고 그냥 허공을 맴돌기 십상이라는 점인데 이를 비유해 '사유의 고공비행'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둘째, 지식인의 지위 지향성이다. 지식인됨의 동기가 내적 조명감보다는 신분상의 보상이라는 외적 동인에 압도된다는 점이다. 연구든 학문이든 그 궁극 목표는 사회적 지위의 획득과 유지에 있는데, 이 점에서 사대부 계층의 문화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공부를 비롯한 학문 일반이 목표 지향적이기보다는 지위 지향적이었으며 흔히 말하는 '지식인의 정치권력 지향성' 역시 그와 농밀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지식인의 국지적 주변성이다. 이는 지식행위 자체의 준거 부재를 의미한다. 지식인이 진리 주장을 펼 때 그 판단과 평가의 준거를 자기 내부에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개의 학문적 발전이 자기 삶의 역사와 단절된 채 선험적인 것으로 주어졌고, 그러다 보니 진리는 늘 저 바깥에 있고 그것의 발신음이 바뀜에 따라 이리저리 뒤쫓기에 급급했다. 바로 이러한 자기 준거의 부재 속에서 이른바 '받아쓰기의 학풍'이 자리잡게 되었고 더 나아가 '기지촌 지식인'이란 자기모멸적인 용어마저 나오게 되었다.

"지식인도 시대의 소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흔들리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는 지성 본연의 책무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서구학문을 인용만 해도 되는 일반적인 얘기꾼 지식인은 더 이상 곤란하다. TV를 포함한 미디어의 영향력을 구걸하거나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즐거운 지식'에 침묵해도 곤란하다. 지식으로 권력을 구걸하고 권력으로 지식을 매수하는 폴리페서의 악순환도 지양되어야 한다. 또한 정보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세상은 또 다른 지식인 집단의 특성을 허락하고 있다. 정보화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저간 지식인 문화의 토대와 관행을 뒤흔들며 지식인의 위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이 때 주목할 것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기능적 지식인의 부상이다. 이 집단은 테크닉한 차원으로 환원된 중립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주어진 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실무능력이 탁월하다. 반면 전문성의 보수주의에 기울어 비판적 지성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적절성이 없다'는 결론 아닌 결론에 의탁하곤 한다. 전문성의 보수주의와 실용성에 매몰되는 한 '사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구조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여전히 요구되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식인이 시대와 현실에서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순응주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중앙일보 1999년 11월 16일 김성기 주간의 '지식인이여 위대한 반역을 꿈꾸자' 컬럼을 인용, 재구성)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한국의 사회와 교육현장을 위한 우리말 학문하기에 대해서도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조한혜정 (연세대)교수는 이름 지었다. 내가 속한 학문은 나와 내 사회를 해석하는 언어가 있는지 자문해본다.

(2) 기독교세계관에 기반을 둔 지식활동

지식 활동의 기반 (2009년 기준): "내 지식활동을 집 짓기로 비유한다면, 기본 토대는 기독세계관이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모더니즘 가치가 큰 기둥 역할을 한다. 그리고 비나 눈을 막아주는 지붕을 포스트모던적 사유가 감당한다. 시대적 풍조에서는 이러한 지적 조합이 넌센스로 폄하되겠지만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제한된 정보로만 시대적 지적 유산을 환원화시키고 대립시킨다.

나는 유신론의 신념을 버릴 수 없고 억압된 개인을 자유케한 르네상스 이후의 몇가지 세계사 흐름을 내 지식운동의 모형으로 삼는다. 지금 내 연구 영역에서도 모던적 성찰이 너무나 절실하며 독립적인 자아로 인식하지 못하는 소외된 개인에 좀 더 집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니체, 밀, 듀이의 사상으로만 세상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안다. 이신론자, 자연주의자, 실존주의자의 책은 기독세계관에 갖힌 순진한 지성을 일깨웠다.

그러나 개체적 인간이, 그리고 그 자아가 창조자로 격상될 수 있단 말인가? 이성의 테크놀로지화와 자유와 평등의 명분 뒤에 숨어 있는 교만과 욕망의 근대사를 보면서 한 때 세상을 풍미한 근대적 성장 담론의 허상을 볼 뿐이다. 하버마스의 지적처럼 "근대성이 만들어 낸 유토피아적 자신감은 실제로 자율성을 의존성으로, 해방을 억압으로, 이성을 합리성으로 바꾸고"(1989, 51쪽) 있다. 그래서 강렬한 태양 빛 같은 모더니즘을 차단시킨 후기(late)근대성의 성찰, 혹은 탈(post)근대 담론이 반갑울 때가 많다.

다만 존재에서 인식으로, 인식에서 언어로 이동시키는 포스트 담론에서 문화적 무정부의 상태를 느끼면 나의 지식활동은 또다시 초조하고 지친다. 예를 들어 언어가 권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푸코 이론은 매우 선명한 통찰이다. 그러나 권력과 담론으로만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논조로 확장되면 기독교의 메타내러티브, 계몽주의의 보편적 민주주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존재는 인식을 앞선다' '자유와 개인은 세상의 변화/회복의 경로였다' 도덕적 지적 무정부 상태는 싫다' '지금 내게 필요한 지성 담론은 비판과 실용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연구하고 있는 언어평가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는 '왜 평가하는가?'이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란 기능적인 질문을 감당할 연구와 교육활동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왜 평가하며, 누가 평가하며, 평가해서 어떻다는 것인가에 관한 세계관에 뿌리를 둔 연구주제들이 대단히 중요하다. 연구와 개발 행위는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으며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가치를 두고 있는 대상(예: 경제적 가치 중심, 경쟁만능주의, 실용주의 등)에 의해 형성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세상(예: 학교, 학생, 평가를 포함한 교육활동, 제도나 정책)을 바라본다.

연구자의 세계관은 분명 자신의 삶과 학문적 행위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보다 포괄적인 공동체의 변화와 질서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하고 있는 학문 활동에서 '왜 평가하는가?' '왜 말하기인가?' '왜 교육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반영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연구주제 역시 수험자의 전인격, 개인의 성장, 다름, 특별히 학습부진아에 대한 배려, 사랑과 공의, 협력, 의미, 감성과 지성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교육/평가를 포함하게 된다. 세상의 논리로 지나친 경쟁, 경제적 가치 만능주의, 이성과 권력에 지나친 맹신, 촤표를 잃은 상업화와 표준화 논리를 경계하는 교육현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3. 언어(영어)평가-말하기-교육 분야의 전문가 활동에 관한 약속 I (Teaching) (2009년 작성. 수정 필요)

한국의 영어 학습자는 새로운 언어를 모방하면서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립적 이중 문화를 소유한, 한편으로 보면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건강하지 못한 다중언어 사용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구주의 의식이 등장하고 다중심적 다문화주의가 논의되고 있는 지금, 가장 바람직한 학습자 모형은 영어를 학습하면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지구촌 여러 문화와 언어를 관용적으로 이해하고 모국어와 자국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편협함을 극복하면서도 자국의 가치관도 잃지 않는 통문화적(intercultural) 영어사용자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이러한 지구적 다문화 시대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한편으론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또 한편으로는 영어교육/응용언어학의 실용주의적 접근방법을 놓치지 않으며, 학생들에게 영어교육평가의 기능적인 단면을 가르치면서, 한국의 영어영문학 전공의 외연을 탐색하고 확대시키겠습니다.

현재 국내의 영어학, 응용언어학, 영어교육 전공 선생님들이 여전히 언어학적인 혹은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제2언어로서의 영어습득/학습에 관련된 교수법, 교재개발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공 학생들은 자신들의 삶과 유리된 실증주의적 가설검증에 근거한 (초)인지적 언어정보 처리과정, 보편적인 영어의사소통능력 모형에 관한 문헌을 거의 암기하다시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앎과 삶의 단절을 경계하면서, 문화간 의사소통이란 큰 그림을 가지고 학생들의 영어 사용 및 교육경험을 강의실에서 이끌어낼 것입니다. 영어를 사용하고 교육하는 모든 응용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연계 분야에서의 지식 습득을 통해 탐색하며, 이를 기반으로 영어교육의 기능적 측면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 때 인지와 정의(affect), 형식과 의미, 자아와 타자를 조화시키며 학습자의 새로운 언어적 정체성을 그 조화의 중심에 두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겠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학습한다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정서적 문화적 사회적 성장과 함께 이뤄진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가르칠 것입니다. 영어만능시대에 학생들이 자기 문화를 절대화하거나 고립시키는 유혹을 경계시키고, 타자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바로 잡으며, 오히려 자기성찰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원어민-비원어민간의 대화를 훈련시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가급적 저는 원어민-비원어민, 모국어-외국어, ESL-EFL, 정확성-유창성 등의 이항대립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공간의 영어사용/학습의 인문학적, 다문화적 접근을 탐색하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저는 숙명여대, 중앙대의 영어영문학과에서 첫 10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어평가론' '영어의사소통능력의 이해와 적용' '응용언어학' 등의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우선 보편적인 혹은 한국인/학습자의 영어능력이나 성취도를 어떻게/무엇을/누가/왜 평가하는가의 문제는 제 강의에서 대단히 중요한 교육내용입니다.

비판이론, 후기구조주의, 생태주의, 실용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의 사회문화적 관점을 수용하지만 특정 이론에 지적 기반 전체를 양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대와 탈근대에 대한 비판의식 위에서 프레그머티즘 측면에서 영어평가라는 학문, 영어평가자의 전문성, 실제 시험 개발과 시행 업무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수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비원어민 영어평가자로서 제 삶과 일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어말하기/듣기 현장에서 영어를 교육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말하기와 스토리 기반의 언어교육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문장 단위보다는 담화, 대화, 스토리텔링 단위에서의 영어 의사소통능력의 교육과 평가방법을 자주 가르칩니다. 또한 비원어민 영어사용자의 정체성 문제, 영어교육 및 사용 현장에서 수집된 한국인의 영어 (거짓)유창성, 특수한 목적에서 사용되는 영어사용 샘플을 학생들과 함께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인터넷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영어사용 현장을 수시로 참관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영어사용과 학습경험을 성찰하게 하고 반드시 정기적인 글쓰기를 통해 의식의 흐름을 다시 인식하도록 도와줍니다. 세상 속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영어(교육정보)를 관찰하는 것이 주체적인 학습자/연구자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과정입니다. 편입학원의 영어교사로, TOEFL 영어시험 수험자로, 영어회화 학습자로, 영어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로, 누구든 어디에서든 응용언어학 및 영어교육학의 담론이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광고, 미디어, 학원, 교재, 개인의 경력 계발 어디서든 새로운 학술담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아울러 윤리, 철학, 교육, 문화, 경영, 광고, 법등의 학문 분야와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새로운 학문분야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개척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학생들이 '다름'에 대해 보다 관용적이기를 가르치며 자신의 선 자리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시작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이야기하게 하고, 일상에서 쓰는 개념으로 현실을 분석해보는 시도를 하게 합니다. 당연하게 믿고 있는 보편적인 이론들을 의심해보고 새로운 우리의 개념을 도출하는 시도를 학생들과 해보는 것을 즐겨합니다. 제가 맡은 학술 영역은 직접 발로 손으로 자료를 모으고 재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삶과 앎을 같은 지평에 두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토론으로 수업 진행하기를 즐겨합니다. 저는 프로젝트형 수업, 공동협력 수업을 선호했으며 평가방식도 자기평가나 동료평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학생들이 질투하고 경쟁하기 보다는 교실에서 상호활동과 협력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학생들이 한국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비원어민 영어 학습자의 정체성을 밀도있게 부각시키고, 왜 그리고 무엇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원어 수업이든, 한국어 수업이든 항상 ‘Go with your own ideas. Go beyond me. Challenge me.'란 말을 반복하면서 주관적이고 창조적으로 학습하기를 강조합니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넘치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 응석만 부리는 학생도 만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3-4학년이 되면 먹고 살 걱정에, 또는 당장 주목받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으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극히 제한적인 주변 정보로 자신의 미래의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무모함도 자주 봅니다. 중고등학교 때 비정상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오다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삶의 모습을 찾는 자기주도성이 부족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연구조교제와 여러가지 소집단 운영을 통해 학생들과 인간적인 만남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의실 안팎에서, 학과목 과제로, 개인적인 요청으로 저는 학생들 스스로가 과거의 삶을 다시 한번 성찰하고 미래의 열정적인 삶을 설계하는 연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중앙대학교의 영어 관련 전공 대학생들, 넓게는 한국인 청년들이나 비원어민 유학생 집단이 리더십으로의 성장 잠재력이 커다는 것을 저는 개인적인 교육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서울 문화가 어색한, 지방에서 올라온 어리숙한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생이었고, 비원어민 예비연구자였지만, 몇몇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오래참음으로 교육적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최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교육자로서 많은 사랑을 베풀기를 항상 소망합니다. 바꾸진 못해도 저는 그 누구도 버리지는 않으려 노력합니다. 감독관으로 학생을 평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어에 관한 연구와 교육활동에서도 이미 비원어민 학생들도 많이 알고 있고 저와 이미 나눌 것이 많다는 것이 제가 갖고 있는 교육관입니다.

특별히 학생들에게 ‘포용하고 화합하는 자세’를 가르칠 것입니다. 정직한 인격과 탁월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삶 속에 행복이 있으며 타인을 감동시킨다고 가르치겠습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는 특히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를 지향합니다. 지위가 영향력의 크고 작음을 결정하고 내 직함이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과거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거짓과 위선의 쓴 뿌리를 성찰하고 자신의 참 모습을 회복하도록 학생들을 지도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이광주(인제대, 서양사)의 '담론'공동체에서의 대학 공부.

"대학이란 막스 베버가 표현하였듯이 여러 종파, 사상, 신앙, 이데올로기가 서로 맞서고 실험되고 담론되는 지적 투기장이다. 유럽대학의 경우 지적 열정은 중세 이래 변함없는 대학의 본질로서 면면히 이어졌고, 이 점 때문에 오늘에 이르도록 그들은 세계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유럽대학의 특징은 담론 공동체란 점에 있다. 그러한 특징은 교수평가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독창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이 때 독창성이란 새로운 물음을 던지는 주제, 그 해법을 위한 새로운 개념, 그리고 방법론의 독자적인 창출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급 교수는 처음부터 자신의 '학풍'을 지닌 이단자로 학계에 등장한다. 자신의 양식을 갖고 나타나는 예술에 가깝다. 독창적이라고 함은 앞선 것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니 담론하는 대학공동체는 또한 비판하고 구상하며 기성관념에 '적대적'이기까지 한 지식인의 육성을 끊임없이 지향한다. 이러한 훈련은 학생 훈련에서도 잘 나타난다.

중세 이래 유럽 대학에 있어 학습방법의 주류를 이룬 것은 강의가 아니라 토론, 세미나이다. 토론은 교본을 중심으로 교수가 지식을 전수하는 강의와는 달리 학생이 스스로 선택한 테마에 따라 리포트를 발표한다. 그 발표에 이의가 제기되고 학생 상호간에, 혹은 좌장격인 교수도 참가해 활발한 담론이 전개된다. 토론의 본질은 과정과 해법에 의미를 찾고 학생들의 변증법적인 지적 훈련으로 유도하는 점에 있다. 토론의 중요성은 학생의 성적평가에도 잘 나타난다. 영국대학의 경우 대학평가에 있어 학생 훈련은 교수의 연구 이상으로 중요시되며 1백점 만점에서 25%를 차지한다. 스스로 인식을 개발하고 자기 자신의 말과 글로서 발표하도록 훈련하는 학풍이다. 그에 반해 우리의 대학은 여전히 학생들이 말할 기회가 많지 않으며 글을 쓸 연습이 부족하다. 질문도 토론도 부족한 채 받아쓰기, 주입식교육, 심지어 선다형 시험문제가 대학에도 이어지고 있다. 말을 하는 연습, 글을 쓰는 방법,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강의실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대학교육의 목표가 개성과 창조적 인재의 양성에 있거늘 대학구조 개혁의 과제가 담론한느 학풍의 창출임은 지당하다고 할 것이다."

4. 언어(영어)평가-말하기-교육 분야의 전문가활동에 관한 약속 II (Research) (2009년 작성. 수정 필요)

교수로 재직하면서 초기에 수행한 연구 과제는 (1) 영어능력과 성취도 모형화(modeling) 작업과 다양한 목적의 영어시험 기획설계, (2) 한국인의 영어의사소통, 거짓 영어유창성 탐구, (3) 영어시험의 국내외 오용 사례와 관련 정책 연구, (4) 대화, 인터뷰, 스토리텔링, 발표, 토론 등의 말하기과업 연구와 진단활동 등이었습니다. 양적연구, 질적연구, 담화분석 등 다양한 연구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연구주제 폭을 크게 넓혔졌고, 지금은 언어(학습)의 테크놀로지화, 시장과 공리 가치에 잠식된 언어(교육평가)정책, 개체화된 수험자와 획일화된 시험준비 문화, 시험의 오용과 횡포, 코스모폴리탄 언어정체성과 언어권리, 이중/다중언어, 디아스포라 언어공동체, 유학생과 이주민, 적정교육, 생태주의 언어담론 등도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문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인류학, 정치학,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학문분야의 경계에서 연구주제를 탐색할 계획입니다.

연구의 소재는 문장보다는 담화와 문화 단위를, 개인보다는 대인간(interpersonal), 문화간(intercultural) 의사소통을, 언어 형식보다는 실천적인 수행능력을, 읽기/쓰기보다는 말하기에, 수입이론과 가설 학습보다는 학습자 개인의 직관과 경험을, 보편성보다는 지역성을, 원어민의 기준보다는 비원어민 정체성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탐색 중이지만 학술적 엄격함이 강조하는 학자로 성장하는 만큼이나 이야기꾼 대중 연구자 (story-teller pop researcher)로 성장하고픈 바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문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꾼으로 시대의 제가 경험하고 공부한 지식을 이야기의 모양으로 전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인 영어학습자들의 실질적인 말하기능력, 스토리구성능력도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역동적이고 상호협력적인 의사소통모형을 이용하여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ESL 중심 교육과정 그리고 원어민 영어능력 기준표에 함몰되지 않고, 감춰진 한국인의 거짓 영어유창성 그리고 원어민 만능주의 현상을 영어교육/사용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로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모국어도, 외국어도 아닌, 제 3의 언어로 (혹은 문화간 의사소통도구로) 영어를 인식하는 학습자가 어떻게 ‘원어민’ 되기를 포기하고 보다 주체적이고 협력적인 영어 의사소통자(communicator)로 성장하는지를 다양한 연구기법과 사용언어 샘플 분석으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탈맥락적인 실험 결과나, 영어권지역에서 비판 없이 수입된 설문지에 의존하지 않는 편입니다. 실증적인 연구기법보다는 담화/담론분석, 내러티브탐구자료, 관찰, 인터뷰, 학습자/연구자 저널, 포트폴리오, 교실 및 평가현장의 실제 언어자료, 그리고 연계 전공을 넘나드는 폭 넓은 문헌연구를 선호했습니다.

감성, 정서, 관계, 문화, 정체성, 지구화 공동체를 염두에 둔 다차원적인 의사소통능력 모형으로 연구를 진행할 때 비원어민 영어사용자/지식인/학습자의 정체성, 말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를 주목합니다. 절대 서구 연구자의 논리를 단순하게 수입하여 실증적 연구의 분석 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지역적 연구자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원어민의 영어, 원어민 학자의 이론적 중심과 차별적으로 우리의 ‘다름’을 주목합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학문적 자료를 축적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으며, 대중적 글쓰기, 인터넷 글쓰기를 학술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킵니다.

원어민-비원어민, 전문가-예비전문가,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앎과 삶을 다른 시각에서 공부해보기 위해서 교육인류학적(문화기술적) 연구접근을 한동안 차용하기도 했고 여러 인문사회 학문분야에서 수집한 비판이론, 후기구조주의 기반의 학술문헌을 저의 연구 논제에 적극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영어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시행에 관련된 실행(action)연구, 또 광고와 기타 미디어에 등장하는 한국 영어교육의 가치 기준을 비판적 서구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논문을 기획한 적이 있고 앞으로 보다 다양한 사회이론으로 영어에 관한 담화/담론을 연구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시대적 배경, 영어평가라는 학문적 속성, 시험개발이란 업무적 특성으로 인해 존 듀이의 실용주의론에 관심을 갖기도 했고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국내 영어시험 개발에 국가의 개입, 큰 시험과 작은 시험의 공존, 목적형 작은시험의 필요에 관대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후기구조주의, 비판이론,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생태주의등의 관점을 부분적으로 조합하여 시험의 횡포와 개인의 권리, 윤리의 문제와 정체성 등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합니다. 특수한 목적(예: 항공, 관광)의 영어사용 모형, 영어사용 직업과 윤리의식, 영어교육 프로그램 평가 연구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연구가 총론 수준에 멈추지 않도록 항상 일상의 영어사용/교육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합니다. 한국의 학자들이 산만하게 너무 많은 일을 진행하면서 정작 학자적 호기심의 원천이 되는 고요한 중심이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회전하는 활동의 고정축이 없다는 것은 분주할 뿐 방향의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비원어민 한국인 언어-교육-응용언어학자로서 제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성찰적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평안하며 평생 동안 제가 새롭게 개척하는 분야에서 성실하고 열정적인 학자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교육적 성장이 멈추지 않기를 진실된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다부진 학자로 성장하면서, 창조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고립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인터넷 글과 단행본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우선은 영어교과 전문가로서 국가, 기업, 학교, 교실 단위에서 건강한 직관과 경험을 축적하고, 이와 동시에 제가 서 있는 학술 연구분야의 지평을 주체적이고 보편적으로 넓힐 수 있는 학자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 분야에서만 시선을 고정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제 전공의 특성이 그런 것처럼, 학제간의 탐색을 멈추지 않고 유목적 지식인으로 당당하게 성장하고자 합니다. 지적으로 성숙해질수록 다른 영역 전문가들과 더욱 부지런히 협력하고, 시간과 공간, 분야가 다른 것들을 조화시켜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여러 영역을 묶는 종합적인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전문직에 그치지 않는 폭 넓은 교양인이며 지식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연구활동을 하면 과욕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 연구활동으로 제 삶이 분주해지고 가정을 포함한 제가 사랑하는 공동체의 결속 혹은 사랑이 깨진다면 제 연구는 언제든 중단할 것입니다.

5. 나의 이야기 주제, 사명, 비전

5-1. 주제 선언문, 사명 선언문

A. 나의 이야기 주제: 나의 이야기는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신앙고백이며,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는 회복을 담고 있다.

*부연설명: '이야기 주제는 사명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댄 알렌더,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인용) 내 인생 이야기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상) 무지와 횡포, (관계) 열등감과 경쟁심, (내면) 소외된 정체성으로부터 고통받는 나와 이웃이 회복하고 변화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저 권력과 성취와 자아몰입적인 나르시시즘에만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정의, 화해, 소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B. 사명 선언문: (After HALF TIME) 예수님의 제자이자 학자로서, 말과 글을 통해, 위축된 가정과 학교, 언어사용자와 수험자를 회복시킨다.

*부연설명: 2009-2010년을 지나면서 제자도와 기독교세계관을 깊게 묵상하게 되면서, 양육과 문서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김기현목사님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을 읽으며 내 삶의 후반부를 인도할 사명선언문 한 문장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이사야 50:4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우리말성경을 보니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학자란 말과 제자란 말이 번역본에서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데 김기현목사님 책 182쪽을 보니 학자라는 히브리어 '림무드(limmud)'는 '제자'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학자는 곧 제자인 셈이다. 기독교세계관에 기반을 둔 문서사역을 감당할 학자는 무엇보다 글로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전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제자도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양떼를 돌보며 복음을 말로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Before HALF TIME) 사명선언문: 유목적 지식인으로서 무지와 횡포가 만연한 영어-시험과 말하기-교육-문화 영역에서 선한 일을 감당한다. firstly drafted: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와 재능으로, 영어평가와 말하기의사소통에 관한 전문가활동을 지식브랜드로 구축하면서, 위축된 학생과 청년 그리고 가정을 회복시키고 리더십으로 세운다. *부연설명: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위축된 학생, 청년, 가정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리더십으로 세워라.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라. 나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 나는 크리스쳔 세계관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랑과 공의의 마음으로 내 전문가 활동을 지식브랜드로 구축한다. 내게 허락된 모든 것을 소모하며 성경적 지혜와 하나님이 주신 용기로 내 지경을 넓히며 끝없이 탐색하고 위대한 모험을 실행할 것이다. 내게 주신 위축되고 지쳐있는 학생, 청년, 가정을 회복시키며 그들을 리더십으로 세우는 일을 평생 동안 쉬지 않고 감당한다.

사명선언에 관한 마음가짐: 하나님은 결국 소명과 함께 삶의 갈망과 의미를 우리 안에 주신다. 그러니 너무 짜내려고 애쓰지 말자. 소명을 찾는다고 끙끙대지 말자. 직업이나 소원목록에 연연하며 사명선언 작성하지 말자. 사실 우린 그저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하면 된다. 더, 그리고 좀 더... 그러다보면 하나님은 알 듯 모를 듯한 내가 쥐고 있는 꿈과 욕망을 해체해 버린 후에 우리 안의 꿈을 다시 창조하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엮어 놓으신 인생의 주제와 꿈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낼 것이다. 사명선언문을 선포하지만, 나는 한 시절에 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건 아니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영원히 부름받았음을 잊지 말자.

5-2. 비전과 핵심가치 (변화와 회복)

A. 비전 11:

1. 묵상(devotion)하는 자: 매일 기도와 QT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한다. 주석이 없는 성경말씀을 읽고, 고요 속에서 하나님과 독대한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 내가 소망하는 비전에 집중하며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평과 저주를 멈춘다. 이렇게 기도한다. 내 삶은 하나님의 뜻이다. 내 욕심과 공명심으로 살지 않으며 내 이름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 그를 신뢰하며 어떤 순간에도 불평하길 포기한다. 'Father is always right. Father! I sometimes don't understand You, but I trust You.'

신앙의 핵심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매일 얼마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이미 소유한 선지식으로부터 자유롭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지만,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경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QT 뿐 아니라 이미 성경적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신앙선배들의 삶을 책이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매일 매일 나를 드러내기 위한 성공지향적인 삶에 대한 욕망을 직시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주권임을 인정하고, 내게 주신 단 한 사람, 상처입은 내 이웃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가시적인 성취나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 방법은 매일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좇는 길 밖에 없다.

2. 예배하는 자: 예배를 사모하며 예배자로 살 것이다. 교회를 섬기며 거룩한 시간낭비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마르바 던, '고귀한 시간 낭비' 27-35쪽에서 인용)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할 때 튀는 불꽃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정은 억지로 짜낸다고 해서 다시 생기지 않습니다. 강요된 열정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오히려 열의를 떨어뜨립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저 자신들을 다그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 지칠 대로 지쳤는데도 생생한 척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로 교회를 섬기며 준비하면서 하는 일이 참으로 고귀한 시간낭비입니다. 이러한 시간낭비가 우리 눈에서 다시 불꽃을 튀게 하며 식지 않는 열정을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열정을 심어주고, 더 열정적인 예배로 나아가게 하는 고귀한 시간낭비입니다. 예배는 시대에 뒤지며, 비효율적이고, 강하지 못하며, 볼 만하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못하며, 때로는 우리 자신들에게조차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로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9-10). 크리스쳔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크리스쳔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크리스쳔은 희망을 말하고 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다. 하나님이 미래이시므로 크리스쳔은 미래이다. 나는 크리스쳔으로 미래의 꿈을 품고 있으며 모험적이고 열정적이다. 하나님이 내게 새 힘과 열정을 주시니 난 평안한 마음으로 내 지경을 차분히 넓힐 것이다.

3. 은사 사모하는 자: 지혜의 은사, 믿음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사모한다. 지혜의 은사가 임하면 하나님의 생각들이 샘물 솟듯 나온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나온다. 지혜있는 자의 특징은 사랑을 받는다. 믿음의 은사를 가지면 세상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안되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이 생기고, 이런 것들은 믿음의 은사가 있을 때 보이는 것이다. 예언의 은사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주고 깨우쳐주고 깨닫게 하는 은사다. 미리미리 나쁜 행위를 막아주고 재앙을 막아주고 저주를 막아주는 은사이다. 가족을 살리고 교육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은사이다.

4. 아빠와 남편: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며 섬긴다. 아빠와 남편의 역할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직분임을 입술로 항상 고백한다. 저녁에 일찍 퇴근한다. 잠자기 전 자녀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며, 그 날 있었던 가장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눈다. 아내와 일주일에 한번씩 반드시 데이트를 한다. 휴일에 일하러 나가지 않는다. 음악, 미술, 운동, 여행, 공부, 관람, 식사 기회를 통해 모든 가족과 시간을 자주 보낸다. 가족과 협력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정경영의 기본 바탕은 크리스쳔 세계관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크리스쳔 가정을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경적 지혜로 자녀를 양육한다.

자녀교육은 경쟁의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다. 남을 이기고,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남보다 더 유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재능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비전을 가지고 목표 지향적으로 살아가며, 일등이 되지 않아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5. 신앙공동체에서의 직분: 매주 시간을 정해두고 공동체 가정의 순장과 청년부 멘토 등의 직분으로 위축된 가정과 청년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가르친다. 가정과 자녀, 청년 사역을 위해 십일조로 바친 시간을 사용한다. 주중의 저녁 시간을 떼어내서 섬기는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일요일은 안식과 섬김의 시간으로 사용한다. 매년 섬기고 있는 가정, 청년들 중에서 헌신할 수 있는 리더를 선정해서 리더십의 마음을 품게 하고, 크든 작든 리더로 설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이 평생 리더십의 소명을 갖도록 격려하고 중보한다

6. 교수: 학교에서 (지도)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들에게 참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을 전하고 논문 및 글쓰기를 지도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경청하는 멘토와 코치 역할도 감당한다. 매주 그들을 기쁘게 초대하고 만난다. 대학원생이라면 용기와 지혜를 전인격적으로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 등산, 달리기, 걷기, 여행, 관람 등 매 학기 한번씩 이벤트를 마련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4-6번 부연: 신앙을 계승시키는 야곱의 사역을 감당한다. 야곱의 사역은 꿈꾸는 요셉들을 양육시키는 일이다(안태경, 김성은.‘아프리카에서 야곱을 만나다' 113쪽 참조). 그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꿈을 전수하고 소망을 심어주고자, 하나님이 요셉들보다‘앞서' 보내서 사용한 자가 야곱들이다(창 45:5). 가정에서, 대학에서, 그리고 교회 청년부에서 자녀, 학생들과 이웃 가정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내게, 그리고 그러한 사역의 가시적 성과/성취가 왠만해서 잘 나타나지/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내게, 요셉을 만들어내는 야곱의 삶은 내게 큰 계시와 위안을 준다. 나는 내 자녀와 내게 허락된 학생, 청년, 이웃들에게 꿈을 전수하고 소망을 심어주는 일을 할 것이다. 디모데후서 2:2(우리말성경): "그리고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내가 말한 것을 들었으니 이를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겨라. 그러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7. 달리기/걷기 하는 자: 달리기/걷기를 통해 나는 변화되고 회복된다. 달리면서/걸으면서 난 교만한 입을 닫고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달리는/걷는 의미를 찾기 위해 글을 써간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난 달린다/걷는다. 달리기/걷기는 내게 유익한 운동이라기 보다는 삶과 글쓰기의 메타포이다.

8. 작가: 나는 글을 쓰는 writer(작가)이다. 매일 3시간은 글쓰기 활동을 실천한다. 공명심으로 글을 쓰지 않으며 생명 살리는 마음, 리더십을 세운다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실천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하면 글쓰기 힘들다. 가장 귀한 시간에 글쓰기를 한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달란트를 탐색하고 확인하기 위해 매일 연습한다. (고린도전서 3:7). 영어평가와 여러 교육/사회 현장의 전문가 활동 뿐만 아니라, 평신도 사역을 통해 회복되고 리더십으로 세워진 역사를 사진과 글로 남겨둔다.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인터넷 '롱테일' 컨텐츠로도 구성해서 세상에 변화와 회복의 증거 및 자료로 전한다.

8번 부연: 김기현목사님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문서사역의 유의미함이 잘 드러나 있다. 13쪽 '글을 쓰는 것 역시 제자도의 일부다.' 20-21쪽 '그리스도인 작가의 기쁨은 말과 글로 생명을 만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며 '문인들은 글짓기를 집짓기로 비유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목수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나 목수와 같이 작가도 새로운 우주를 설계하고 창조하는 일을 한다.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 또한 나름 작은 우주이다.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작가(author)가 된다는 것은 창조주(author)가 그리하셨던 것처럼 창조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말이고, 글이다. 작가는 하나님의 일을 대행한다... 글짓기는 하나님이 하시던 창조의 사역을 이어가는 행위다. 하나님의 창조를 반영하고 모방하고 대신하고 계승한다." 30쪽 "우리의 삶 이야기는 그리스도 이야기의 일부다. 또한 우리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의해서만 해석 가능하다... 그 분의 삶과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일치시키는 것, 예수와 우리 '이야기의 합류'가 영성이 도달할 지점이다."

9. 연구자: 나는 연구자이고 학자이다. (영어)평가, (말하기)의사소통, 교육사회 분야에서 '1인기업'임을 자부할 수 있을 만큼의 폭이 넓고/넓거나 깊이가 있는 지식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심은 사랑과 공의로, 인문학과 경영학을, 혹은 교육 콘텐츠와 활동을 인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연계하면서, 특히 언어(영어)평가의 여러 분야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연구/교육 활동을 전개한다. 내 욕심과 공명심으로 일할 유혹과 미련을 매일같이 내려놓고, 예수님이 내게 주신 지혜와 용기로 전문가 활동의 비전을 전하면, 오고 떠나는 사람에 대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에 대해 담대할 수 있다.

전문가 활동의 키워드는 변화와 회복이다. 지식을 편집하고 연계시키며 새 지식브랜드를 세우고 위축된 개인을 변화경영시키거나 인문학적 성찰로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전문가 활동을 평생 동안 집중한다. 절대 안주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위험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평화를 주는 주님을 신뢰한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안전이 아니라 평화를 주셨다. 지금까지 이룬 것을 놓칠까봐 현실 속에 안주하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실패할까봐 꿈을 억누르고 고통을 피하려고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다.' 나는 내 학문 분야에서 제사장이자 예언자적 소명을 받은 청지기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 선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부족한 역량과 이러한 선포 사이 큰 간극을 느끼며 때로는 감추고 숨고 싶을 때가 많지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열심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10. 기관/기업의 리더: '신동일연구소'처럼 정직하게 내 이름을 걸고 작은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한다. 프로보노(pro bono) 연구소로서 내가 가진 전문성을 이용해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다. 이윤이 아닌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며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사회공헌에 참여하기 위해 연구소를 운영하며 가진 자로서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 엄밀히 보면 연구소는 기관(institute)이 아니며 운동(movement)이다. 세상의 관행, 형식으로 남아 있지 않고 위축된 사람을 회복시키고 창의적인 교육컨텐츠의 개발과 교육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세우는 운동이다. 비전을 공유하고 리더십을 세우는 것에 항상 집중하며 새로운 언어-교육-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하나님이 허락해주신다면, 훗날 크리스쳔 정체성을 가진 연구소 이름으로 창업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 (마 5:13-14)의 리더십 역할을 감당한다.

연구소의 비전: 마음이 불편하고 위축된 영어학습자가 영어사용자로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세계와 접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1) 실용주의 입장에서 작은 시험, 돕는 평가, 말하기시험을 잘 만들고 널리 가르치며, (2) 말하기, 그중에서도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잘 활용해서 영어능력을 진단하고 적절한 교육컨설팅을 수행한다.

11. 크리스쳔 지식인: 기독교 세계관, 크리스쳔과 지성, 크리스쳔으로 학문하기 분야에서 지식을 축적하고 동역자와 협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은 크리스쳔들에게 크게 두가지 사역을 위임하신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선교명령(Mission Mandate)이며,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크리스쳔들이 잘 모르는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는 영혼을 구하는 사명이고 하나는 지성을 구하는 사명이다. 문화명령:'God bless them and said, "Be fruitful and multiply. Fill the earth and govern it..." (Genesis 2:28) 'The Lord God placed the man in the Garden of Eden and watch over it.' (Genesis 2:15).

나는 국내 대학에서, 그리고 전문적인 학문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활동을 유지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의 토대 탐색, 신앙과 학문의 일치, 학문과 인격의 조화를 구하는 것이 내게 현재 허락된 하나님의 학문명령, 교육명령임을 믿는다. 성경적 규범의 보편성이 부정되면서 기독교 세계관의 상대화 및 국소화를 경계한다. 개인주의, 자유주의, 비판이론, 상대주의적 윤리관, 포스터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실용주의, 다중언어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무분별한 경쟁, 경제적 가치 중심, 규범을 넘어선 상업주의와 권력화, 과학주의의 지나친 신봉, 탈도덕적 실용주의를 경계한다.

특히 수단, 돈 벌기, 출세하기, 상업적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제도 및 사회문화의 현상을 비판하며 기독교적 대안을 고민한다. 이러한 지식인 활동이 없다면 기존 교육-사회-문화의 추종자가 될 수 밖에 없으며 문화의 형성자가 되라고 하는 하나님의 위임을 따르지 못한다. 즉, 교회에서, 그리고 교인끼리 있을 때만 있는 하나님을 믿으며, 자신이 일하고 있는 학문과 지성의 영역에서는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11번 부연: (www.dongilshin.com 게시판 'Journal' 116번 글 참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이 왕 되시는 곳이 ‘하늘'이며,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곳이 ‘땅'이다. 하지만 이 ‘땅'은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버림받은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그러진 이 땅을 회복시키시겠다고 계속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그 약속의 신실하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나라가 이 곳에 들어오게 되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모든 곳이 하나님 나라이며,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곳(그 곳이 어디던 간에)이 ‘하나님의 나라'인 반면,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은 모든 곳(그곳이 어디던 간에)이 ‘땅끝'이다. 예수님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종족을 우리가 ‘땅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끝'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만을 가르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는 모든 곳이 ‘땅끝'이라면 그 ‘땅끝'은 내 학문활동의 주위에서 참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사람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만으로 여기고 기능적으로만 취급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바로 ‘땅끝'이다. 아이들에게 숨쉴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내돌게 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이 ‘땅끝'이기도 하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이 선포/인정될 수 있도록 지식활동을 통해 돕는 것이 크리스쳔 지식인의 도리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강해야 효율적이다' '로마를 정복해야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생각했던 세상에 대해 무기력하게 죽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는 점이다.

또 예수님은, 이 세상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이 어리석다고 했지만, 언제나 (소외된 자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마다 그 자체로 사랑하시는 분이었다는 점이다. 지식으로 대립으로, 교만으로 자랑하기를 포기하고, 우리가 약함을 고백하고, 오직 우리가 약할 때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믿어야 한다. 캠퍼스 그리고 학문 분야에서도 하나님이 동일하게 일하심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B. 핵심가치 5:

1. 열정: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을 보면 그저 받은 1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등장한다. 열심으로 열정으로 살지 않는다면 순종하지 않는 종이다. 우리가 가진 것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어디서든 감동의 인생을 살 것이다. 받은 것을 감사하며 부족한 것을 껴안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열정으로 살 것이다. 열정을 가르칠 것이다.

2. 중심: 내 마음의 평정을 잃을 만큼 분주하다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중심이다. Ken Gire는 '묵상하는 삶' 124쪽에서 이렇게 말하고있다: ‘문제는 마르다의 준비가 아니라 산만해진 마음이었다. 많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많은 일이 한가지 꼭 필요한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르다에게는 일의 원천이 되는 고요한 중심이 없었다. 마음의 골방이 없었다. 회전하는 활동의 고정축이 없었다.’ 연구와 강의를 하며 내 몸이 열심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자 하는 선한 뜻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3)

3. 접속: 크리스쳔 리더십은 접속의 리더십이다. Plug-in!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께 접속하고 믿음의 공동체에 접속하면서 서로 섬기며 리더십을 가진다.' 우리 인생은 실패와 절망 투성입니다. 그 인생에 아름다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비전이며, 비전은 오로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향이다. 비전으로 살면, 방향이 보이고 성공과 행복은 전방위적으로 이해된다. 비전의 마음을 갖게 되면 우리가 너무 연약하다는 것을 안다. 위대한 삶을 살기에 너무 죄가 많다는 것을 안다. 결국 하나님을 붙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먼 길을 걸어가기 위한 첫 걸음은 크리스쳔 공동체와의 접속이다. 크리스쳔 멤버십을 확실하게 갖는 것이다. 그런 다음 소그룹을 섬기고 이끄는 리더십의 마음을 갖는다. 크리스쳔이라면 모두가 크리스쳔 리더십을 사모해야 한다. 크리스쳔 리더십에 관한 선한 욕심을 가져야 한다. 섬김의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 크리스쳔은 크리스쳔 공동체에 접속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축복하고 훈련시키며 결국 더 큰 바다로 인도할 것이다.

4. 회복: 보지 못한 자, 갇힌 사람,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빛과 희망을 준다. 교육현장의 실천가로, 평신도 사역자로 나는 평생 희망을 말할 것이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이사야 42장 1-7절, 개역개정 )

5. 나눔: 크리스쳔 능력은 나눔에서 온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 오병이어의 사역에서 보더라도 가진 것으로 헌신하고 나눌 때 하나님이 모두 채워주신 기적이 나타났다. 교육현장의 전문가 활동과 평신도 사역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다. '예수께서는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했습니다'(누가복음 9:16)

5-3. ACTions 9

(1) Daily QT. (갈라디아서 5:24)

(2) Daily Writing.

(3) Eating Right.

(4) Running/Walking.

(5) Sunday Service.

(6) Weekday Small Group.

(7) Weekend Calling (to say 'I love you').

(8) Weekly Fun.

(9) Yearly Celebration.

5-4. Role Models (2009년 작성. 수정 필요)

(1) From the World:

Role Model을 찾고 마음에 오래 품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는 가슴이 뜨겁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들도 많습니다. 마음에 너무나 많은 것을 품고 있어서 Role Model도 바뀌는데 언젠가 모자이크를 해야 할 듯합니다.

부산한 일정 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진 꿈의 조각을 맞추고 싶어, 2008년 1월 현재 나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어 봅니다.

우선 '안철수연구소',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생명을 살리는 배종수 수학교육연구소'처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구개발, 집필-출판, 교육활동에 집중하는 (1인)연구자 활동이 참 좋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내 Role Model입니다.

구본형씨는 1인-기업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www.bhgoo.com)의 소장이었습니다. 연구소 페이지에 가면 ‘내꿈의 첫 페이지’ ‘연구원프로젝트’ 등의 활동내역이 있습니다. 한국 IBM에서 오랜 동안 근무하다가 40대 중반에 짜여진 조직 안에서 열정 없는 일과를 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경영전문가임을 선포하면서 1인-기업 활동을 시작합니다. 감성이 넘치는 탁월한 글쟁이입니다.

안철수박사는 의사 일과 병행하며 자신이 만들어 왔던 백신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치료하다 연구소를 창업합니다. 전직 의사선생님이 2명의 직원과 함께 연구하며, 책 쓰며, 경영 배우며,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벤처 연구소를 성장시켰습니다. 안철수연구소는 백신 회사에서 통합보안회사로, 상장회사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서울교육대학교 배종수교수는 미디어를 통해 여러차례 소개가 된 분입니다. 사랑의 교회 주일학교 초등학생부 교사이며 삐에로 옷을 입고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님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대학의 힘은 개인입니다. 이 분은 대학교수로 개인 전문가활동을 하다가 '생명을 살리는 배종수 수학교육연구소(www.js-math.net)'를 세우고 보다 응집력있게 수학교육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평생 전한다는 비전을 실천했습니다. 개인의 전문지식과 크리스쳔의 영성으로 새로운 지식브랜드를 만드셨습니다.

정진홍, 얼 쇼리스와 같은 '1인 전문가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알기로 배종수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크리스쳔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개월 전 우연히 이 분들의 글을 읽게 되고 배종수교수와 얼 쇼리스의 전문가 활동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인문학과 경영학을, 혹은 교육활동을 인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연계하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을 조직적으로 전하고 가르치는 전문가 활동과 브랜드 구축방법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개인 지식브랜드를 구축할 때는 1인 연구자/집필자는 자기주도적으로 치밀한 자기관리와 저술, 강연, 경영컨설팅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걸어야 합니다. 축적된 지식에 기반을 두고 오프라인에서 자기경영아카데미, 자기경영워크샵으로 작은 학교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정진홍씨는 컨텐츠 크리에이터, 감성리더십에 관한 스토리텔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별히 인문학과 경영학의 연계실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CEO에서 ‘정진홍의 감성리더십’ 코너를 최장기간 진행하며 변화와 혁신 그리고 창조의 감성리더십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또한 CEO를 위한 조찬특강 ‘메디치21’의 리딩멘토로 활약하며 인문경영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미국 언론인 얼 쇼리스는 빈민에게 인문학과 예술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만듭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일방적 강의 대신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삶 속에 숨어 있는 답을 스스로 찾도록 돕습니다. 빈민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빵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클레멘트 코스는 현재 북미 호주 아시아 3개 대륙 5개 도시에서 53개 코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개인 브랜드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특징은 (1) 일을 삶과 분리시키지 않는 투명성, (2) 자신의 선을 지키는 독한 고집, (3)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신을 기록하는 근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브랜드를 자신 스스로가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 분 모두 지식관이 크리스쳔 세계관을 가진 저와 어긋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지식 브랜드의 힘, 감성의 전달력, 글쓰기의 매력, 인문학의 연계성을 자신의 일터에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부분은 저도 닮고 싶습니다.

위에서 나열된 1인-전문가활동을 저도 기획해보았습니다. 이분들이 하는 일의 공통점은 구축과 회복, 변화와 실천입니다. 1인-전문가 활동을 통해(안철수 연구소,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배종수수학교육연구소, 클레멘트 코스,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의 ‘감성리더십’ 코너), 지식을 편집하고 연계시키고 새 지식브랜드를 세우고 위축된 개인을 변화경영시키고(구본형),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치료하고 경계하고(안철수), 생명살리는 수학교육을 감당하고(배종수), 인문학적 성찰로 가난과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얼 쇼리스) 전문가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신 사역을 묵상합니다. 조직의 규제, 세상의 유행에 위축되고 현혹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쳔 학자이며 교육현장의 실천가로서의 제 정체성을 반드시 당당하게 지켜내고 싶습니다. 제 교육과 연구활동의 근본은 하나님이 제 마음에 심으신 사랑과 공의입니다. 제 전공에서 뿐 아니라 크리스쳔 지식브랜드 구축을 반드시 감당하길 원합니다.

저도 세우고 회복시키고 싶습니다. 제 삶의 여정 역시 지금까지 구축과 회복의 스토리로 가득합니다. 평생을 세우고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2) From the Faith:

성경 속에 수많은 크리스쳔 리더십을 모두 사모하고 존경합니다. 고집쟁이 노아,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한 요셉, 리더십으로 부족했지만 신실했던 모세, 영원한 청년 갈렙, 울보 다윗, 혈기가 많았지만 귀하게 쓰임받은 베드로, 제가 유학생일 때 참 좋아했던 에스더와 다니엘, 모두가 귀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제 일상과 소망을 살피면서 사명/비전선언문을 준비하는 중에 단 한 사람의 리더십을 반복하여 묵상해보았습니다.

2008년 1월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성경 속 리더십은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가슴에 품은 구절은 느헤미야 7:1입니다. ‘성벽을 건축하고 문짝들을 달고 나서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황폐화된 예수살렘의 상황을 느헤미야가 알게 됩니다. (느 1:3)

느헤미야는 안타까워하고 염려하고, 결국 기도하고 계획한 것을 실행합니다. 아닥사스다 1세의 술관원으로 그에게 지혜롭게 간청해서 예루살렘의 성읍을 재건축할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성경에서 배운 것을 삶의 현장에서 지혜와 용기로 구체화시키는 ‘행동의 리더십’을 느헤미야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느헤미야는 결국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의 삶을 영적으로 회복시킵니다.

느헤미야는 관원으로 건축가로 ‘전문인 사역자’로 불릴만한 평신도 사역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언젠가 동일한 사역을 저도 감당하길 원합니다. 정비와 개혁보다 그가 가진 신실한 믿음과 강한 신념을 먼저 닮고 싶습니다. 제 교육현장에서 전문인 사역을 감당할 때, 그리고 교회 리더십으로서 가정과 청년을 섬길 때, 구축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저도 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고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위축된 자들을 회복시키고 프로그램을 세우며 귀한 리더십을 임명하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관원이지만 건축가로서 행정가로서 전문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한 느헤미야처럼 저도 여러 분야를 탐색하고 연계하며 하나님이 제게 가장 귀하게 맡기실 특별한 사역을 계속해서 사모하고 싶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느헤미야의 사역과 리더십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또 성경 밖에서는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Johannes Kepler)를 마음에 품어 봅니다. (다음은 양승훈박사님의 '그리스도인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153-4쪽 내용 일부입니다.) "천문학을 연구하는 케플러는 자신의 지성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학술활동을 사용했습니다. 천문학을 연구하는 그의 동기는 신학을 공부하는 동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심지어 페스트로 아내와 자식을 잃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그가 평생을 천문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한 것은 자신의 연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천행의 운행을 연구하여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솜씨를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천문학의 제사장 정체성을 확실히 마음에 품고 있던 학자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칼빈주의자들에게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선지자, 제사장,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칼빈주의 사상은 현대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6. 연구회 & 대학원생 지도 지침서

'중앙대학교 응용언어학 연구회'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그 곳에서 공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 대학원의 진학률이 떨어지고 영어(교육) 관련 학과의 경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수학하길 원하는 학생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TESOL, (영어)교육대학원에서 (국제)교사자격증을 획득하려는 학생도 많은 반면에 제가 속한 영어영문학과에서 응용언어학 분야로 함께 연구물을 기획하고 협력할 대학원생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또 제가 배운 것으로 가르칠 수 있는 일은, 언제 어디든 있었습니다. 늘 할 수 없는 일에 속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사실 제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에 헌신하기에도 시간은 늘 부족했습니다. 단 한 명의 대학원생을 두고 몇 년을 가르치기도 하고, 타학교/학과 학생이 찾아오더라도, 정성을 다해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가르쳤습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창업, 취업, 진학, 유학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성실하고 창조적으로 가르치겠습니다.

제 지도학생들은 이론이나 기초 원리도 공부하지만 현장성, 지역성(locality), 개별성을 반영한 개발, 출판, 실무, 제안서 기획도 학습해야 합니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언론학, 교육학 등과 같은 인접 학술 영역에서 연구주제를 탐색하기도 하고, 현장의 필요를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점검합니다. 각자 참여하고 있는 연구 과정과 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유사 분야를 연구하는 선후배에게 관련 자료를 공유하도록 합니다. 함께 학술논문, 번역서, 단행본 chapter 기고에 참여할 것이고 학교 안팎의 세미나, 학술대회 등에도 참석합니다.

연구회에 참여하는 연구원은 출신 학교나 기타 배경으로 차별되어서는 안되며 일정 기간 동안 견습생으로 기존 연구원들의 학술활동에 함께 참여합니다. 연구회의 지도교수는 누구도 비윤리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위계질서로 연구활동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개별적인 성장을 관찰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도록 노력합니다. 참여 대학원생들이 소망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주목합니다.

지도교수는 전공 영역 안팎으로 삶과 앎을 이항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가급적이면 아는 것과 살아가는 것을 같은 지평에 두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학생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학술공동체를 함께 운영하며 살아가며, 준비된 자들에게는 소모임의 리더, 미래의 인재로 기름 부어주며, 적재적소에서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줍니다. 2001-2003년 언어평가 연구회 리더인 장소영, 2004-2005년 내러티브탐구 연구회 리더인 유주연, 2006-7년부터 크고 작은 연구회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김나희, 송지현, 김금선, 김주연, 김종국, 혹은 2008-9년 이후에 강석주, 박진아, 박윤규, 임관혁 등이 연구회의 리더 역할로 (예비)학자/전문가로 성장한 전례가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대학원생 지도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부장적 권위를 지양하고 개인의 성장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것이 지침의 핵심 내용입니다. 2015년부터 적용합니다.

1. 종전에는 대학원 지도학생들을 자주 만나고, 자주 가르치고, 자주 회의하면서, 채근하고, 격려하고, 요청하면서 공동연구, 학위논문,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가부장의 마음으로 지도했습니다. 재학 중에 성장하고 변화할 것을 당부하면서 감독관 역할을 자처했고 모든 지도학생들은 한 명도 낙오 없이 자신에게 유의미한 연구논문을 재학 중에 서둘러 유명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역서 혹은 기타 단행본을 출판해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지금까지 학생들과 많은 연구성과를 만들어냈고 학생들은 희망하는 곳으로 유학, 취업도 잘 했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도방식은 학생으로 하여금 교수에 의존하게 하며 성과에 집착하게 하는 부작용을 발생시켰습니다. 결국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지 못하기도 하고 서로 감정적인 소모도 컸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지도교수가 연구활동을 주도하지 않고 학생들이 주도하도록 관계로 지도지침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2. 예를 들어 석박사 학위논문은 반드시 학생이 주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저는 학위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많은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논문을 마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를 그들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학위논문마저 의존적으로 마친 학생은 대개 졸업 후에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며 고통스럽게 혹은 여전히 의존적인 마음으로 (예비)연구자 활동을 합니다. 앞으로 학생이 학위논문을 쓸 때는 지도교수인 저를 독자(reader)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쉽게 자신의 논문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도교수는 학위논문의 각 단계에서 학생이 해야 될 일들을 알려주는 책임이 있습니다. 학생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자신의 연구를 어떻게 지도교수에게 논리정연하게 전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중에 본인 연구의 타당성과 중요성을 먼저 이해합니다. 연구의 논제가 왜 중요하고 어떠한 영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지도교수인 저는 학생에게 여러 각도에서 많은 질문을 하며 학생이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3.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것 뿐 아니라 기타 크고 작은 연구를 수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BK장학금, 성적우수장학금, 연구조교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1-2년에 1-2 편의 연구논문을 국내 학술지에 게재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학생이 주도성을 갖고 연구활동에 참여하도록 지도하겠습니다. 우선 연구에 관한 논문미팅을 좀 더 공식적으로 그리고 가급적 정기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시로, 필요에 따라,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제가 연락을 하곤 하면서 자주 만나서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런 방식을 자제하고 개별 학생의 연구 진척에 대한 설명을 제가 듣고 코멘트를 해주는 논문 미팅의 기간과 시간을 정례화해볼 참입니다. 미팅에서는 정서적인 지원을 서로 나눌 수도 있지만 가급적 새 지식의 획득, 연구의 진척에 대해 지도교수로서 들어보고 자세하게 연구의 과정이나 절차에 대해 코멘트를 하며 다음 미팅 때까지 해보았으면 하는 걸 알려주겠습니다. 시급하게 마쳐야 하는 연구논문이 아니라면 평균 3-4주에 한 번 정도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논문 미팅을 엄격히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며 학생 측에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논문미팅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4. 논문 미팅을 할 때는 일단 만나고, 구술로 얘기하면서 문제를 도출시키고 해결해보자는 회의방식도 없애려고 합니다. 어떤 논문 연구를 시작하든지 학생과 첫 번째 논문 미팅에서 충분히 상의해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만날 것인지 정하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례적인 논문 미팅도 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인 논점으로 발전되지 않고 문헌 점검이나 원고의 진척이 없는데 굳이 논문 미팅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제안한 지도학생들간의 전체 세미나 때 지도교수와 학생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지도교수 입장에서 굳이 규칙적인 논문미팅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논문 미팅 준비는 다음과 같이 진행합니다. 학생은 먼저 연구에 관한 진척 상황을 반드시 원고로 만들어서 제게 제출합니다. 저는 그 원고에 일단 피드백을 써줍니다. 피드백의 양은 연구의 진척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학생은 피드백을 점검한 후에 나와 필요하다면 e-mail 등으로 논문미팅 약속을 정하고 만납니다. 피드백만으로 학생이 충분히 납득을 한다면 논문미팅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5. 논문 미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구술로 미팅하는 그 시간이 아니라 미팅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글쓰기 절차입니다. 학생은 미팅하기 전, 예를 들어 일주일 전에 작성한 원고를 지도교수에게 email로 제출하고 지도교수는 가급적 3-4일 안에 그 원고에 코멘트를 적어 보냅니다. 학생은 코멘트를 읽고 논문 미팅 때 교수와 할 얘기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약속을 확정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논문 미팅이 진행되면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번, 또는 수시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논문 미팅이 계속되면서 얼마나 자주 만날 것인지의 계획은 수정할 수 있습니다. 또 규칙적으로 만나다가도 약속한 원고를 학생 측이 보내지 못하거나 기타 이유로 논문 미팅을 참여할 형편이 되지 않으면 사전에 연락을 교환하고 논문 미팅을 취소하면 됩니다. 다만 예비연구자인 학생 입장에서는 글쓰기와 논문 미팅 준비가 늘 쉽지 않기 때문에 원고를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약속을 미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일주일 안으로 일정을 다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 넘는다면 다음 번 논문 미팅 때까지 다시 준비하는게 낫겠습니다. 서로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상호존중감이 형성되면 논문 미팅은 유연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지도교수와 학생이 공동으로 연구논문을 준비할 때 연구의 책임을 지도학생 측에 더 위임하려고 하며 연구의 결과에 대한 소유권(authorship) 역시 학생이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답답한 마음에 선행연구자인 제가 연구배경, 연구질문, 연구내용 등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전체 원고의 편집과 교정까지도 자처하고 감당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제가 연구결과물의 소유권을 주도적으로 조정했습니다. 그러나 학생 측이 연구에 관한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져가면 당연히 소유권 역시 학생이 더 가져가게 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제가 급한 마음에 1저자로 학생과의 공동연구를 기획하고 연구의 내용과 절차에 자주 개입했지만 이제부터는 학생과 공동연구를 한다고 해도 가급적 2저자로 참여하겠습니다. 학생이 주도하는 연구가 되도록 저는 의견을 제한적으로 내며 역할도 처음부터 제한적으로 맡겠습니다. 제가 더 개입하고 참여할수록 학생 연구가 아니라 제 연구가 되며 학생의 주도성, 독립성, 책임감은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7. 물론 지도교수는 지도학생과 공동연구를 언제든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지도교수편에서 몇몇 학생들의 잠재력이나 창의적인 생각을 주목하면서 공동연구를 먼저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도학생들이 특히 석사 재학생들이 서둘러 논문원고를 완성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제 생각에 석박사과정 재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을 하기위한 학위논문입니다. 학생은 수업을 듣고,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학위논문을 준비합니다. 지도교수의 우선적인 책임은 지도학생의 학위논문 작성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연구자로서의 역량이 있다면 학위논문을 쓰기 전부터 연구논문을 쓰고 유명 학술지에 자신의 연구성과를 게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그럴 필요도 없고 또 그럴 역량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위논문을 통해 새로운 지식, 자기주도성, 학술적 글쓰기를 배웠다면 지도학생은 학위논문을 마무리할 때, 혹은 학위논문을 마무리한 후에 자신의 연구를 보다 전략적으로 수정보완하고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지도교수를 제2저자로 초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가급적이면 지도교수의 의견을 참고하여 단독연구로 자신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면 좋겠습니다.

8. 대학원엔 유사-동일 연구영역을 가진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끼리 서로 알고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협력적 공동체의 구성을 학생들간의 책임으로만 맡기지 않고 전체 세미나를 지도교수의 주관으로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하는건 좋다고 봅니다. 학생이 주도적이고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시키는 방안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연구논문을 책임지게 하지만 자칫 학생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여러 상황적 이유 때문에 정서적으로나 관계적으로 고립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연구논문 뿐 아니라 학업이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미나 때는 지식 뿐 아니라 정서적 교환, 일상적 소재의 나눔도 허락하겠습니다. 또 전체 공지도 하고, 새로운 연구 경향도 공유하고, 혹은 누군가의 연구를 발표하거나 크리틱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세미나의 참석은 선택적이며 개별 연구의 진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세미나 리더와 코디네이터를 대학원생들 중에서 제가 뽑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원은 개별 연구자가 학술적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는 곳입니다. 개인주의 전통은 존중받아야 하며 유사-동일 전공 연구자간에 위계적 질서가 엄밀하게 지향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업, 세미나, 혹은 협력 프로젝트의 운영처럼 함께 모여 공부하고 서로 돕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학술연구자간의 공동체의식도 필요합니다. 지도교수와 세미나팀의 리더십이 존중되기를 부탁드립니다.

9. 세미나의 진행방식은 다음과 같이 할까 합니다. 세미나 코디네이터는 일정과 장소를 공지합니다. 필요한 경우에 발표자, 사회자, 발표내용도 공지합니다. 저는 발표가 있다면 내용을 듣고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세미나의 발표자가 될 수 있으며 한 학기에 한번 정도는 제가 발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미나 때마다 제 수업의 보강처럼 생각하고 제가 주도적으로 가르치진 않겠습니다. 저는 수업활동을 통해서만 가장 폭넓게 그리고 성실하게 가르칠 계획이며 개별 논문미팅, 지도학생 세미나는 수업이 아님을 늘 상기하겠습니다.

10. 이처럼 논문 미팅, 월례 세미나를 정례화시키면서 제가 학생에게 먼저 카톡, 메일, 전화로 연락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개인 사정으로 저와의 논문 미팅에서 학생이 보고할 게 없거나 아니면 만날 상황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미팅으로 미루고자 합니다.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해서, 미팅에 불참해서, 연구가 진척이 없다고 해서, 채근하거나 빨리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거나 해올 것을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학생 연구는 학생의 책임이기 때문에 하지 않거나 못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며 필요한 때에, 혹은 본인이 꼭 해야 할 때에 결국 분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1. 학생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고 그들을 학술적 변화와 진척을 한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대신에 저는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학술연구자, 지도교수, 관련 분야의 책임 있는 학자가 되도록 제가 맡은 강의, 단독 저술, 혹은 기타 연구활동에 보다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가르치고 지도하는 시간의 총합을 줄이고 대신에 제가 맡은 강의내용을 더욱 잘 준비하고 제가 하는 개별연구부터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12. 개별 논문 미팅과 세미나로 지도교수-학생의 상호작용이 이뤄지겠지만 학생은 제게 논문미팅 등 관한 e-mail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루지 않고 email 답변을 하겠습니다. 논문 미팅을 위한 원고를 보내면 논제의 흐름과 문장간 결속력, 주제 일치성 등에 대해 가급적 서둘러서 코멘트를 하고 보내겠습니다. 지도교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구술 미팅을 통해 격려하는 것보다는 학술적 글쓰기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적하는 것으로 변화를 주고자 합니다. 결국 석박사 학위는 글쓰기를 통해 획득되기 때문입니다. 잘한 부분과 잘 하지 못한 부분을 구분해서 코멘트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침도 제공하겠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다시 하고 결국 완성하는 것은 결국 학생 몫입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학생과 지도교수가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문서화’의 전통을 구축하게 되며 학생 측에서는 문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성찰해볼 수 있고 교수 측에서도 보다 객관적으로 학생의 연구활동과 문제점을 판단하고 저장해둘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생을 면대면으로 만나 가르치고 격려하기 보다는 한 페이지라도 혼자서 더 써보게 하면서 자신의 학술연구물을 바라보고, 학술연구자로서 반성하고 성장할 기회를 모색토록 할 것입니다.

13. 15년 동안 지도학생들에게 감독관, 조정자, 가부장적인 책임연구자의 정체성으로 일해오다가 학생들에게 자율, 독립, 자아성찰, 회복력(resilience), 예비연구자로서의 책임감을 위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제 스스로에게는 늘 주도적이고 독립적이며 고난이 있지만 변화하고 돌파하는 독립심과 회복력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제 내면의 모순입니다.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박사과정 학생들은 내가 ‘돌봐야 하는’‘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특히 박사과정 학생들은 지도교수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갖춘다면 ‘나와 함께 일하는, 혹은 앞으로 일할’‘동료’로 대우하고자 합니다. 박사과정 학생은 좁고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이고 그(녀)가 수년 동안 자신에게 맡겨진 학술적 책임을 감당해야만 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박사를 마쳐도 지도교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사자 앞에 고양이처럼 꼼짝도 못하기도 합니다. 박사학위를 획득해도 교수들은 학생을 사실상 우습게 보기도 합니다. 자존감도 낮고 성취감도 낮습니다. 그러나 제게 박사과정 지도학생이 있다면 그들은 내 동료가 되는 것이며 그들이 박사가 되면 진심으로 축하할 것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지도학생이 박사가 될 때 그(녀)에게 특별한 신뢰와 기대를 보내겠습니다.

14. 고통 없이 학위논문을 마친 분은 없습니다. 문제, 위기, 오해, 방해꾼, 갈등이 있었지만 그것을 결국 해결하거나 지나오면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결국 그(녀)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학자로서 회복력(resilience)을 훈련받은 것입니다. 저도 대학원생 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박사과정 중에 겪는 재정적 어려움, 감정적 혼란, 관계의 어려움, 학술 연구자로서의 좌절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저는 학생들이 힘들 때 정서적으로 감싸주기 보다는 학술적으로 더욱 지원하고 싶습니다. ‘We learn and grow because of challenges.’도전이 있을 때마다 경청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그 마음을 다양한 글쓰기로 옮길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위기와 고통의 순간은 학생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 때 지도교수가 개입하면서 그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으려고 합니다.

15. 아울러 대학원 수업 때 종종 추가 연구를 앞으로 더 할 것을 약속하고, 혹은 관련 연구논문을 방학 중에 완성시킬 것을 약속하고, 잠재력과 기대감만으로 학점을 먼저 주는 관행도 없애려고 합니다. 해당 학기 동안에 수행한 참여와 결과물만으로 평가를 하고자 합니다.

16. 성적우수장학금, 연구조교장학금 등 학교 안팎에서 장학금 지원을 받는 대학원생은 종종 연구물을 1-2년 안에 학술지에 게재해야 하는 등의 연구활동에 관한 조건을 이수해야 합니다. 연구성과가 제 때 나오지 않는 경우에 지도교수나 해당 학과에 제재 조치(예: 담당 연구조교인 학생의 연구성과가 약속된 기간 안에 나오지 못하면 신임 연구조교를 추후에 임용할 수 없음)가 있기도 합니다. 연구성과의 조건과 제재 내용은 앞으로도 계속 변경되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연구성과의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 학생은 지도교수인 저와 매 학기 마다 최소 1회씩 연구의 진척 과정과 책무에 대해 반드시 상담을 해야 합니다.

17. 학생의 주도성과 독립성, 글쓰기 절차를 강조하면서 지도교수나 학생들의 연구성과, 연구자로서의 태도, 열정과 동기 등이 크게 향상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와 변화가 목격되지 않는다고 해서 쉽사리 지도교수 지침을 종전으로 바꾸지 않겠습니다. 더욱 중요한 건 개인의 공간이고, 인격의 보장이며, 평화적 공존입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하고, 시기하고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나와 남의 차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가 초라함을 느끼더라도 내 삶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타협하는 마음’을 배우는게 더 중요합니다. 졸업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자존감이고, 성과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과 동료 그리고 지도교수에 대한 진실한 태도입니다. 성과가 나오지 않고 학생들이 주도성과 글쓰기를 배우지 못해 결국 독립적으로 졸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심지어 모두가 자립적인 성장을 모색하지 못하고 저 역시 더 이상 아무도 지도할 학생이 없다 하더라도 지도지침을 바꿀 의향은 없습니다.